20기 운영·시공 8기 2030년 38개 목표 국외수주도 넘쳐나
인력부족 계속땐 안전성 담보못해 속도조절만이 답
지난해 12월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과 원자력발전소 4기 수출 계약 성사 뒤 정부가 ‘원전 르네상스’를 꿈꾸며 축포를 쏘아 올리고 나섰지만, 원자력발전 건설 및 운영 현장에서는 한숨소리와 탄식이 깊어가고 있다. 조급한 원전 확장 정책에 따른 심각한 인력 부족 때문이다. 여기에 당장 효율만을 앞세운 지나친 외주화(아웃소싱) 문제까지 겹치면서 원전 안전까지 위협받고 있다.
■ 인력난 넘어 안전문제까지 위협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던 지난달 17일 오후 3시께 시험 가동중이던 부산 기장군 신고리원전 1호기에서 냉각수가 격납 시설 안으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내부에서 방사선 노출 등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내려지는 ‘백색비상’이 발령됐다. 다행히 중앙통제실에서 냉각수 밸브를 잠가 상황은 종료됐다. 고리원자력발전본부는 “방사능 물질의 외부 유출은 전혀 없으며, 원자로는 안정된 상태다”며 약 세 시간 만에 백색비상을 해제했다.
이날 사고 원인과 관련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홍보실은 “아직 조사중”이라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기본 운영 매뉴얼에서 설계 변경된 부분을 잘 숙지하지 못한 운전원의 조작 미숙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리원전본부 관계자는 “백색비상은 3단계 방사선 비상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지만 그마저도 발령되는 일은 거의 없어 이례적인 일이었다”며 “(사고 원인이) 넓게 보면 최근 심각해진 인원부족과도 연관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실제 최근 원전 현장에서는 인력부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원전 건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1970년 고리발전소 착공 이래 4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건설돼 운영 중인 원전이 20기인데, 현재 시공 또는 시운전 중인 원전이 8기(신고리1·2·3·4호기, 신월성1·2호기, 신울진 1·2호기)에 이른다. 또 이명박 정부가 출범 첫해인 2008년 확정한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10기의 원전이 더 건설될 예정이다. 여기에다 정부는 아랍에미레이트연합 원전 수주를 계기로 터키,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지에서도 대규모 원전 건설 및 운영 프로젝트 수주를 추진하고 있다.
이렇듯 원전 수요가 폭증하고 있지만 전문인력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원전 특성상 시공과 운영 전문인력 양성에 최소 3~5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전 전문인력은 신입 입사 뒤 1년가량 기본 교육과 직무연수를 거치고, 현장 투입 뒤에도 12개월 또는 18개월마다 연료를 교체할 때 이뤄지는 오버홀(계획예방정비) 과정을 두세 번은 거쳐야 ‘믿고 맡길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이렇듯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커지자, 한수원은 기존 발전소 운영 인력 일부를 시공·시운전 현장으로 투입했다. 이 때문에 한수원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경우 기존 발전소 근무인원이 정원 대비 90% 밑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10명가량으로 짜인 24시간 교대 운영팀에서 고참 기술자가 맡는 ‘발전대리’라는 보직이 없어졌다.
■ 속도 조절과 차분한 검토만이 해답 문제는 이런 심각한 인력부족이 원전 부실시공과 운영 과정의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원전의 특성상 이런 문제의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신고리1호기 사고 같은 사례가 있을 수 있지만, 사고의 직접 원인이 ‘인력 부족’이라고 딱 떨어지지 않는다. 한수원 한 직원은 “원전 시스템이란 것이 워낙 대규모이고 전자화돼 있어 문제가 있어도 하루아침에 표가 나지 않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사전 예방조처를 소홀히 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모른다”이라고 말했다. 노조 쪽도 “인력부족이 원전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외부 용역을 주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나 원전을 운영하는 한수원 쪽도 문제 심각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식경제부는 최근 관계기관들과 원전인력 양성 방안을 논의하고 예산도 늘리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이달 중순께는 원전특성화 대학 설립 등 원전 전문인력 공급 대책도 내놓을 예정이다. 하지만 여기서 퇴직인력 재고용을 제외하고는 당장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은 뚜렷하지 않다.
결국 속도조절만이 유일한 답이라 게 현장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물론 그 이전에 원전이 기후변화협약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에너지원인지, 전체 전력공급에서 원전 비중을 60% 수준까지 늘리기로 한 2008년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이 타당한지 등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의 송유나 정책연구실장은 “원전 확대에 대한 논의는 둘째치고 원전 전문인력 문제는 당장에는 누구도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문제인 만큼, 일단 원전확대 정책 속도를 늦추며 차분한 검토를 하는 것밖에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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