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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세대 요즘 대학생…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CKwon 2006. 7. 13. 16:17

 

 

 

내년에 서울의 유명 사립대를 졸업하는 이모(25) 씨는 친구들에게서 ‘취업 5종 세트’의 전형으로 불린다. 취업 5종 세트는 취업을 위해 아르바이트, 공모전, 봉사활동, 인턴, 자격증은 필수라는 데서 생겨난 신조어.

그는 올해 1학기 유럽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했고 공모전 수상 경력도 있다. 각종 인턴과 봉사활동은 기본이다.

이 씨는 복수전공으로 경제학을 택했지만 경제학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원래 전공인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다는 것만으로는 취직하기 힘들다는 생각에서 내린 선택이었다. 교환학생 경험도 전공 공부보다는 이력서를 더욱 화려하게 채우기 위한 성격이 짙었다.

 

▽“꼼수라도 좋다, 취직만 된다면”=청년실업률이 7%를 넘는 취업난 속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요즘 대학생들에게 이념이나 규범은 옛말이다.

다소 변칙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현실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지상과제다.

실제로 연세대 최평길 명예교수 연구팀이 대학생의 의식 흐름을 추적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목표 달성에 어려움이 있어도 정도(正道)를 걷겠다”는 대학생은 절반가량 줄어든 반면 “정도가 아니라도 상관없다”는 대학생은 3배가량 증가했다.

1977년에는 목표 달성에 ‘합법적’ 방법만 쓰겠다는 대학생이 10명 중 8명꼴(82.7%)이었으나 1987년에는 54.8%로, 2005년에는 46.3%로 계속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반면 ‘비합법적’으로라도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학생은 1977년 8.4%에서 2005년 23.8%로 3배 가까이 늘었다.

P세대가 취업에 매달리게 된 것은 경제침체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 교수 연구팀의 조사에서도 P세대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경제침체(40.6%)로 나타났다.

1987년에는 반독재 민주주의(34.3%)가, 1993년에는 사회 부정부패 항거(39.3%)가 대학생들의 지상과제였으나 2005년에는 0.9%만이 학생운동에 관심을 보였다.

그 대신 전공학과 공부(34.5%)와 취직 준비(29.5%), 인간관계 확대(26.2%) 등이 큰 관심사였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요즘 대학생들의 방법론을 도덕주의적인 관점에서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며 “이들이 사회의식이나 책임감, 진실성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불안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의 1977년 조사에서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목표를 수정하겠다는 학생이 없었으나 1987년 대학생 중 11%가, P세대의 26.3%가 목표를 수정하겠다고 답한 것도 눈에 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명분에 대한 집착보다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려는 P세대의 실용성을 보여 주는 결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 대한 실망은 30년간 변하지 않아”=대학생들이 걱정거리로 느끼는 요소 가운데 정치의 후진성은 1987년 46.6%, 1993년 30.6%의 비율을 보였고 P세대의 26.1%도 이를 걱정거리 중 하나로 꼽았다.

정치권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이다. P세대가 집단별로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 비율은 집권당 3.6%, 야당 3.4%, 국회 2.3%에 불과했다.

10여 년 전 정치, 사회 개혁을 외쳤던 386 운동권 출신이 정치권에 많이 진출했지만 P세대는 그들에게도 불신의 시선을 보냈다.

P세대는 무엇보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포용력과 도덕성을 문제 삼았다. 49.9%가 포용력에, 43.5%가 도덕성에 불만을 나타냈다. 전문성 부족(37.4%)과 이념지향성(33.8%)이 뒤를 이었다.

한편 북한에 대한 대학생의 적대감은 줄었다. 1977년 조사에서 북한은 대학생이 가장 싫어하는 국가(61.3%)였다.

그러나 P세대는 5.9%만 북한을 싫어한다고 답했다. 일본(63.3%)이나 미국(26.4%)보다 크게 낮은 비율이다.

1977년 대학생의 63.5%가 ‘북한의 남침’을 위협 요소로 꼽았으나 2005년에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4.7%).

1987년엔 대학생의 17.4%가, 1993년엔 2.1%가 북한의 남침을 위협 요소로 생각했다.

또 P세대는 자본주의 체제로의 흡수통일(16.9%)보다는 남북한 합의통일(64.1%)을 지지했다. 1987년 조사에서는 자본주의 체제가 47.8%를, 혼합절충식이 38.3%였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한총련 정책실장 지낸 87학번 최홍재씨▼

“80년대 취직고민 털어놓으면 왕따 북한실상 알게된뒤 이념맹신 접어”

1987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앞 ‘표주박’. 어슴푸레한 술집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이곳에 모인 대학생들은 밤샘 토론을 하기 일쑤였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념과 통일, 시대의 고민을 놓고 설전을 벌이다 때론 언성을 높이기도 했고 취기 탓인지 분노를 토해 내기도 했다.

“술자리에선 늘 무거운 얘기가 오갔죠. 만약 그 자리에서 누군가 취직 고민을 털어놓거나 당구와 같은 취미 얘기를 꺼냈다면 ‘왕따’를 당했을 겁니다. ”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87학번인 최홍재(39·사진)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은 “당시엔 모든 대학생이 대학을 ‘이념과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최 씨는 “우리 과 동기가 50명쯤이었는데 그중 40여 명이 사회과학학회에 가입해 활동했다”며 “토론을 하다 이념과 현실 사이의 혼란을 이기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는 친구도 적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1991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학생운동의 정점에 섰다. 1993년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조국통일위원회 정책실장으로 활동했고 이듬해엔 전국연합자주통일위원회 부장 직도 맡았다.

그러나 최 씨는 1990년대 후반 계속된 북한의 대규모 아사(餓死) 사태를 지켜보며 혼돈에 빠졌다. 그는 “200만 이상의 동포가 굶어 죽는 모습을 보며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됐다”며 “신을 섬기듯 믿어 온 ‘이념’이 동포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 같아 죄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그는 P세대로 불리는 요즘 대학생들이 한없이 부럽다고 했다.

“현실 속에서 자유롭게 꿈을 개척하는 요즘 대학생의 모습은 생기가 넘쳐 보기 좋습니다. 그 자유를 맘껏 누리면 좋겠어요.”

그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자유를 가능케 한 지난 시절 선배들의 노력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개인의 문제 못지않게 사회를 고민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줬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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