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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보살>에서 미모와 신통력으로 강남을 주름잡는 무속인 태랑 역을 맡은 박예진은,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묵혀 둔 코믹 연기'를 보여준다. 어느새 데뷔한 지 10년. 그 시간 동안 '배우 박예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샅샅이 파헤쳐 보자, 팍! 팍!
<청담보살>에서 미모와 신통력으로 강남을 주름잡는 무속인 태랑 역을 맡은 박예진은,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묵혀 둔 코믹 연기'를 보여준다. 어느새 데뷔한 지 10년. 그 시간 동안 '배우 박예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샅샅이 파헤쳐 보자, 팍! 팍!
글 l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 구성 | 네이버영화
너무나 인상적인 데뷔작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1999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이하 <여고괴담 2>)로 데뷔해 올해로 배우 생활 10년을 맞은 박예진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데뷔작에서 말갛고 슬픈 눈으로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던 소녀는, <발리에서 생긴 일>(2004)에서 모든 것을 가졌지만 사랑만은 가질 수 없었던 여인으로 성장했다. 단아한 생머리와 도도한 표정으로 박예진을 규정지을 즈음, 그녀는 문득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통해 낯선 얼굴을 내비쳤다. 방금 잠에서 깬 것 같은 부스스한 차림새로 닭을 잡고 능란하게 회를 치는 박예진이라니! 그러나 그녀의 반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11월10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 <청담보살>에서 그녀는 본격적으로 코미디 연기에 도전했다.
- 1999년 <여고괴담 2>로 데뷔했을 때 열여덟 살이었다. 요즘에는 10대에 데뷔하는 게 일상화됐지만, 당시엔 꽤 이른 나이에 데뷔한 경우다. 아주 어릴 때부터 배우가 꿈이었나 보다.
처음엔 그저 막연한 꿈이었다. 배우라기보다는 연예인을 꿈꿨던 거겠지. 10대 초반에 부모님께 넌지시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말씀 드렸는데 평가가 냉정하셨다. "네가 지금은 예쁘장한 편이지만, 그 정도 예뻐선 안 된다"고 하셨다. 부모님이 객관적이시다.(웃음) 그리고 "결코 네 생각처럼 행복하지만은 않은 길이다. 굉장히 힘들 것"이라며 만류하셨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 잠깐 그러다 말 거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사춘기를 지나면서도 꿈이 바뀌지 않더라. 이유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이 일을 하게 될 것 같았다.
- 스스로에게 배우로서 '끼'가 있다는 걸 느낀 건가?
학교 행사 때 무대에 올라가 아이들을 휘어잡는 식의 '끼'는 없었다. 조금은 내성적이고 쑥스러움도 많이 타는 성격에 가까웠다. 부모님이 만류하셨기 때문에 어디 가서 "내 꿈은 연기자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도 못했다.(웃음) 데뷔할 때까지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연기자가 되기엔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 아닐까 걱정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만약 나를 위해 무대가 마련되면 잘할 것 같은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다.(웃음)
- 혹시 데뷔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나? 예를 들면 거리에서 캐스팅되었다거나….
멋진 비하인드 스토리는 없다.(웃음) 연기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굳힌 뒤에 내가 적극적으로 여기저기 소속사에 사진도 보내고, 잡지 모델에 응모도 했다. 사실 부모님은 일찍 데뷔하길 원치 않으셨고, 나도 성인이 된 다음에 데뷔하는 것이, 길게 봤을 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중고등학교 제도권 교육의 현실이 너무 싫었다. 사람들은 돌이켜보면 그때가 좋았다고 하지만, 난 절대 아니다.(웃음) 그 획일화된 교육 환경이 너무너무 싫었다. 내 생명을 갉아 먹는 시간이라고 느낄 정도로. 여기서 살아나갈 길은 연예계 활동을 빨리 시작하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1998년에 한 잡지사에서 내가 보낸 사진을 보고 연락을 해왔다. 그 잡지 모델을 계기로 CF 에이전시에서 조금씩 연락이 왔고, <여고괴담 2> 오디션도 보게 된 것이다.
- <여고괴담 2>는 전편의 폭발적인 흥행 덕에 영화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오디션 경쟁률도 엄청났을 것 같다. 부담감도 상당했을 것 같은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 것도 몰랐던 때라 부담감도 없었다.(웃음) 내가 해야 할 몫을 알아야 부담감도 생기는데, 그때는 무조건 시켜만 주신다면 감사할 때니까. 박예진이라는 배우가 처음으로 연기할 기회를 얻었다는 게 좋았고, 너무 모르니까 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 민규동, 김태용 감독이 당신을 캐스팅한 이유를 설명해주던가?
또래 아이들과 다른 독특한 색깔을 봤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감독님들이 생각했던 '효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하셨다. 당시 오디션 때 즉흥 연기를 많이 시켰다. 대본보다는 즉석에서 배우들끼리 짝을 지어 상황극을 연기하도록 했는데, 그때 나의 순간적인 집중력이나 정형화되지 않은 모습에 높은 점수를 주신 것 같다. 연기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나로선 운이 좋았던 거다.
- <여고괴담 2>에서 효신은 인상적이었다.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세상을 보는 듯한 묘한 눈빛이 아직도 많은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기억에 남는 현장 에피소드가 있다면?
효신은 굉장히 성숙하고 이질적인 느낌을 가진 아이였다. 내 외모가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이는 편이다.(웃음) 함께 연기한 배우 중에서 내가 가장 언니 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실제 나이는 내가 가장 어렸다. 효신을 연기하면서 내가 교복을 입고 현장에서 왔다갔다 하면, 스태프들이 "효신이는 여고생이 아니라 은행원 같다"며 장난쳤던 기억이 난다.(웃음)
- 확실히 강렬한 데뷔작이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클 것 같다.
<여고괴담 2>는 나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라고 부를 만하다. 연기자는 매번 다른 역할을 맡는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다 비슷하기도 하다. 조금씩 상황은 다르지만 사람 사는 모습이란 게 다 엇비슷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평범에서 많이 벗어난 인물을 연기할 기회가 많지 않다. 하지만 나는 데뷔작에서 앞으론 못 할지도 모르는 특별한 인물을 연기한 셈이다. 지금도 내가 효신을 다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할 정도로, 깊고 매력적인 인물을 데뷔작에서 만났다는 점이 가장 의미가 크다.
내가 좋아서 하는 연기, 대중이 좋아하는 연기
- 강렬한 데뷔작 덕에 스크린에서 자주 보길 기대했는데, 드라마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당시엔 "이번엔 영화를 했으니 드라마로 무대를 넓혀보자"라는 생각조차도 없었다. 그냥 순진한 마음에 캐스팅 제의가 들어오면 "우와! 내게도 배역 제의가 들어왔네?"라면서 좋아했지.(웃음)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나. 당장 오늘 저녁에 뭘 먹어야 할지도 미리 생각하기 힘든데, 내일 뭘 먹을지 생각하는 건 너무 먼 일 아닐까. 그렇게 내게 찾아오는 기회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서 잡았고, 그 결과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밖에서 볼 때는 배우들이 좋아서 혹은 계획적으로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배우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그다지 넓지 않다.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는 배우는 정말 소수다. 어떤 작품에 확 꽂혀서, 내가 꼭 해야겠다고 욕심 부려서 배역을 따내는 경우는 별로 없다. 보통은 아무리 원해도 내게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분들은 '배우'라는 일이 '자아 실현'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배우'는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고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 드라마 출연작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발리에서 생긴 일>(2004)이다. <여고괴담 2>가 성공적인 출발이라면, <발리에서 생긴 일>은 도약 지점이 될 듯하다.
작품이 너무 좋았다. 어떻게 보면 가장 뻔하고 통속적인 멜로를 너무나 현실적으로 풀어낸 드라마였다. 보통 이런 구조의 드라마에서 두 명의 여배우에게 한 사람은 '무조건 착한 여자', 한 사람은 '무조건 악녀' 역할을 맡기는데 <발리에서 생긴 일>은 정말 현실적인 인간과 그들의 어쩔 수 없는 갈등을 그렸다.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아서 기뻤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힘든 작업이었다. 분명 재미있다는 건 알겠는데, '영주'라는 캐릭터를 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남자들에 대한 감정은 무엇인지 모르겠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영주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웃음) 너무 어려워서 속으로 "<발리에서 생긴 일>을 하고 연기를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나는 죽도록 힘들었는데 보시는 분들이 너무 좋아하시더라. 배우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연기와 대중이 좋아하는 연기가 다를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배우는 나만 좋아서 하는 취미 생활이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고생스럽게 큰 산을 하나 넘으면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 혹시 예전 출연작들을 다시 찾아보는 편인가?
거의 안 본다.(웃음) 아주 가끔, 인터넷에서 출연작의 짧은 동영상을 발견하면 본다. 하루는 <발리에서 생긴 일>의 동영상이 올라와서 봤는데, 내가 우는 연기를 하면서 실제로 울컥하는 게 보이더라. 뭐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지, 원….(웃음)
- 필모그래피를 보면 매년 작품을 쉬지 않는 것 같다. 워커홀릭처럼 보이기도 한다.
꾸준히 일했고, 꾸준히 쉬었다.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일이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이 내 삶의 부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한 작품 끝나면 반드시 놀아야 한다!(웃음) 아예 작품 시작하면서 "이거 끝내고 어디로 여행을 가나?"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내 인생을 위해 일하는 거지, 일을 위해 인생을 거는 건 앞뒤가 바뀐 것 같다. 일해야 놀 수 있다는 직장인 마인드가 생긴 거다.(웃음)
- 그런 생각의 변화가 찾아온 계기가 있었나?
자연스럽게 그렇게 변했다. 만약에 데뷔 이후 한 번도 내려온 적 없이 쭉쭉 치고 올라갔다면, 이런 생각을 못했을 것 같다. 계속 위를 보고 올라가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면, 아래로 떨어질까 조바심 내고 전전긍긍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조바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 <여고괴담 2>의 인상적 데뷔와 <발리에서 생긴 일>의 성공을 제외하면 꾸준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측면도 있다. 심정적으로 중압감이 크진 않았나?
밖에서 "쟤는 왜 못 치고 올라가? 슬럼프 아냐?"라는 말을 듣고서야, "어? 내가 혹시 슬럼프인가?"라고 생각하는 스타일이다.(웃음) 스스로는 잘 모른다. 오히려 통장이 바닥을 보였을 땐, 돈 없어서 여행을 못 갈까 봐 불안하고 두려워한 적은 있다.(웃음) 쉬면서 슬럼프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나름 즐겁게 생활했지. 오히려 연기하다가 어려움에 맞닥뜨리면 "이거 어떡하나" 싶을 때가 슬럼프라면 슬럼프다.
- 보통 여배우들 사이엔 은근한 라이벌 의식 같은 게 있다고들 한다. 은근히 어떤 상대를 경계한다던가, 누구보다는 더 잘나가야 한다고 조바심 낸다던가. 하지만 박예진에겐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아도 묘하게 호감형이다.(웃음)
내가 그런 대결 구도를 싫어한다.(웃음) 이상한 경쟁심과 유치한 질투에서 멀어지고 싶어하는 성격이다. 작품도 각 배우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한 작품 안에 녹아 드는 게 좋다. 나만 돋보이려고 애써 봐야 소용없다. 그런 몸부림은 자신을 괴롭게 만들 뿐이지 결코 돋보이거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건 튀는 게 아니라 조화라고 생각한다.
- 굉장히 대범하고 당찬 성격인 것 같다. 노인 같은 소리도 툭툭 잘 한다.(웃음) 이런 성숙한 느낌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연상의 캐릭터를 많이 연기한 것 같다. 혹시 그런 점이 스트레스를 주진 않았나?
어릴 때부터 '애늙은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배우 되서는 조숙해 보인다고 나이 많은 캐릭터를 많이 맡았고. 그래서인지, 연기하면서도 내 캐릭터를 잘 이해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발리에서 생긴 일>도 그런 셈이다. 20대 초반에 무슨 사랑을 알고, 인생을 알겠나.(웃음) 생각의 폭이 좁을 때라서 연기의 폭도 좁았던 것 같다. 또 한 가지, 내게는 발랄하고 밝은 면도 많은데 진지하고 성숙한 인물을 많이 맡다 보니 그런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한 가지 믿음이 있었다. 나 같은 얼굴이 20대 후반부터는 더 앳되어 보인다는 믿음!(웃음) 그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정말 20대 후반이 되니까 더 어린 배역을 맡겨주시더라.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이 나이를 기다렸다.(웃음)
맨 얼굴의 용기와 즐거움
- 케이블 드라마 <위대한 캐츠비>(2007)를 선택하는 모습에서 박예진의 변신을 어렴풋이 예감했다. 케이블 드라마 <여사부일체>(2008)의 선택도 꽤 의외의 도전이었다.
일단 <위대한 캐츠비>는 원작을 너무너무 좋아했다.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고 싶었다. 대하 사극 <대조영>(2006)에 출연하고 있을 때인데, 긴 작품이다 보니 다른 연기에 대한 목마름도 있었다. 연기 공부를 많이 해야 할 때인데 시대극에만 묻혀 있는 것 같아서 현대극도 하고 싶었다. 마침 <위대한 캐츠비> 캐스팅 제의를 받았고, 원작과 감독님, 함께하는 배우들을 믿고 했다.케이블 드라마가 공중파에 비해 무조건 낮은 평가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여사부일체>도 특별한 시도였다.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지만,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잘 되지 않을지언정, 모든 작품은 내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안전하게 웅크리고 있는 것보다, 먹고 배탈이 나더라도 "이게 무슨 맛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야 다음에 음식을 선택할 때, 기준이 생기게 되니까.
- 예능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도 그렇게 선택한 것인가? 굉장히 신선했다. 예능에 자주 출연하던 배우가 아니라서 신선했고, 다른 멤버와 자연스럽게 섞이는 모습도 신선했다. 우리가 박예진에 대해 참 많이 몰랐다는 생각도 했다.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다. 내게 섭외가 들어왔다는 거다. 나한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지?(웃음) <패밀리가 떴다> PD님이, 내가 영화 홍보로 몇 번 예능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가능성'을 보셨다는 거다. 그분들은 내게 뭔가 끌어낼 부분을 보셨다는데, 그게 뭔지 나도 몰랐다.(웃음)사실 예전에는 배우가 자신의 일상을 너무 많이 드러내는 걸 좋지 않게 생각했다. 조급하게 대중에게 "발견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제안을 받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더라. 주변에서 친구들이 "너의 이런 밝은 면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힘을 주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어린 나이도 아닌데, 한창 젊고 힘 있고 열정이 넘칠 때 왕성한 활동을 해야 한다면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해 온 방식만 고집하면 다른 사람들도 내게 모험을 걸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 도전과 변신에 대한 갈증이 쌓였던 건가?
연기자가 비겁해서 변신을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변신할 기회가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참 많다. 감독님들도 그 연기자에게 어떤 얼굴이 있는지 다 알지는 못한다. 그렇다 보니 전작을 보면서 원하는 이미지를 찾아 캐스팅하게 된다. 그래서 계속 비슷한 이미지의 인물을 맡게 되는 거다. 너무 오래만 하지 않는다면, 내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을 폭을 넓히는 데 <패밀리가 떴다>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솔직히 좀 놀랐다. 닭 잡고 회 뜨는 '달콤 살벌 예진 아씨'로 변신하다니!(웃음)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설정한 줄 알았다.
처음부터 감독님께 말씀 드렸다. 난 웃기는 건 못하니까 대신 몸으로 때우는 건 열심히 하겠다고, 다 시키시라고.(웃음) 원래 별로 겁이 없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닭을 잡고 생선 다듬는 걸 이렇게 무서워할 줄 전혀 몰랐다.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들도 너무 기겁을 하더라. 남들 눈에는 내가 얌전하고 새침하고 유난 떨 것처럼 보이나 보다.(웃음) 공주병에 내숭일 것 같은 얘가 실상 보니 선머슴 같은 것? 그 의외성 때문에 좋아해주신 것 같다. 나는 너무 과격해서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생각 이상의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 현장은 어땠나?
중고등학교 때 갔던 '극기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정말 재미있는데, 몸은 너무 힘들다. 몸 쓰는 일도 많고, 게임도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어른들이 그렇게 뛰고 놀면서 게임 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재미있게 찍고 나면 다음 날 아침에 온 몸이 결려서 못 일어난다.(웃음) 여름에는 하루 종일 땡볕에 나가 있어서 어깨 피부가 다 벗겨졌다. "여배우가 이렇게 상하고 망가지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고 걱정하다가도 막상 하다 보면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웃음) 정말 즐거웠다. 함께했던 출연진, 스태프와 정도 많이 들고. 원래는 6개월만 할 생각이었는데, 한 주만 더, 한 주만 더, 하다가 1년을 꼬박 채웠다.
- <패밀리가 떴다>가 박예진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연기자로서 폭을 넓힌 기회가 아닐까? 그리고 "완벽해 보여야 한다"는 최면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것 같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면 나만 스트레스 받을 뿐 사랑 받기 힘든 것 같다. 오히려 내 빈틈을 자연스럽게 보여줘야, 다른 사람도 마음을 열고 가깝게 다가오는 것 같다. 나를 좋아해 달라고 일부러 망가진 건 아니지만, 내 빈틈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더 편하게 인간미를 느꼈던 것 아닐까 싶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최선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생애 첫 로맨틱 코미디, <청담보살>
- <패밀리가 떴다> 이후 일종의 '흐름'이 생긴 것 같다. <선덕여왕>(2009)에 <청담보살>(2009)까지 줄줄이 캐스팅이 이어졌다. <선덕여왕>은 타이틀 롤이지만 중반에 하차하는 인물이라 아쉽진 않았나?
일단 <선덕여왕>은 분명히 잘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했다.(웃음) 대본이 너무 재미있었다. 예전에 사극을 한 경험도 있고 '천명'이라는 캐릭터가 지금까지 했던 역과 완전히 다른 인물은 아니지만, 내가 연기자로서 안정적이라는 걸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했다. 짧고 굵게 등장했다 빠지는 건 오히려 좋았다. 이 정도 호흡이, 내가 최대한 소화할 수 있는 범위라고 판단했던 것이 맞았던 것 같다.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었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힘든 스케줄을 소화해 와서 큰 무리는 없었다.(웃음) 1년에 한 작품을 해도 '빵 터지면' 사람들이 알아주는데, 나는 티도 안 나게 1년에 여러 작품을 하면서 체력을 트레이닝 했다.(웃음) 힘들 것을 알지만,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 오랜만에 <청담보살>에서 영화 타이틀 롤을 맡았다. 소감은 어떤가?
영화로는 데뷔 이후 10년 만에 제대로 관객에게 인사하는 것이다. <청담보살>의 무속인 '태랑'은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역할과 180도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연령대도 비슷하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한 인물과 만나서 즐거웠다. 얼핏 보기에 태랑은 세상을 달관한 것 같지만, 맑고 순수한 소녀 같은 구석이 있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도 처음이다. 매번 진지하고 무겁고 심각하고 슬픈 장르에서 맴돌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내 나이 또래의 평범한 인물의 일상과 연애를 연기한다는 게 굉장히 신선했다.
- 태랑의 직업은 무속인이다. 캐릭터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
있었다. 일단 내 종교와 배치되는 직업이다.(웃음) 처음엔 보살 역할이라는 말만 듣고 고사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운명과 팔자를 믿고 타인의 길흉화복을 점치며 사는 태랑이 막상 자신의 운명을 만나서는 고민하고 거스르고 싶어한다. 태랑의 직업 설정이 오히려 운명보다는 노력을 강조한다는 내용이 좋았다. 종교와 직업을 분리해서 생각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원칙이 있어야 한다. 작품에는 악역도 필요하고, 다양하고 특별한 직업의 인물도 필요하다. 메시지가 좋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작품이라면, 그 작품 안에서는 어떤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청담보살>은 재미와 따뜻함이 공존한다. 영화는 다양한 삶을 보여주지만, 영화를 봄으로써 사람들이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들면 좋겠다.
- <청담보살>에서는 박예진의 일상 연기가 빛을 발한다. 특히 후줄근한 승원(임창정)이 운명의 남자라는 사실을 안 태랑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하소연하는 장면은 완벽하다.
그렇게 보였다면 다행이다.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지만 태랑이 직접 코믹 연기를 하는 장면은 거의 없다. 주인공이지만 자칫 딱딱해 보일 수 있어서, 태랑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불어넣고 싶었다. 처음 시나리오는 영화의 뼈대에 가까웠다. 감독님이 배우들이 캐릭터에 색을 보태서 더 매력적으로 만들 기회를 열어주셨다. 그 장면은 내가 색을 더하고 살을 덧붙인 장면이라 특히 좋아한다.
- '일상 코믹 연기의 달인' 임창정과의 호흡은 어땠나?
현장에서 진짜 많이 배웠다. 내 역할에 활기가 생긴 것도 임창정 오빠 덕분이다. 진부할 수도 있고, 신선하지 않은 아이디어도, 창정이 오빠는 팔팔 뛰는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어떤 신은 거의 다 애드리브다. 현장에서 완벽하게 새로 만들어진 대사가 많은데, 그게 너무 적절하고 영화와도 잘 어울리는 거다.
-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공개된 장면 중에 승원이 태랑에게 고백하면서 "이미 나의 마음은 당신의 것인 걸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게 다 애드리브다. 정말 귀신처럼 아이디어를 잡아내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발전시킨다. 이래서 임창정을 최고라고 하는구나, 새삼 확인했다. 특히 코미디 장르에서 배우의 순발력이 얼마나 영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됐다. 정말 웃기지만 영화 전체를 해치지 않고, 작품 전체를 살리는 배우가 정말 몇 명이나 될까? 최고다.
- 로맨틱 코미디를 처음 하면서 데뷔 10년차 배우의 넓어진 폭을 스스로 느끼지 않았을까?
내가 해 온 역할의 폭이 넓어진 거지, 내가 넓어진 건 얼마 안 된다. 앞으로 더 다양한 걸 해보고 싶은 욕심과 아직 내게 오지 않은 기회를 찾아서 도전하는 열망이 나를 더 넓게 만들어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 것은 좋다.
- 스물여덟 살 박예진의 삶은 어떤가?
평범한 박예진으로선 딱 좋을 때인 것 같다.(웃음) 늙지도 어리지도 않은 딱 좋은 때. 앞으로 더 좋아지는 부분도 있겠지만, 가장 평균적인 '좋은 때'인 것 같다. 그리고 10년차 배우 박예진으로선 아직도 멀었다. 몇 작품 하지도 못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신인 꼬리표를 떼고 있더라. 내가 그래도 되나 싶었다.(웃음) 비유하자면 지금은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시기가 아닐까. 미취학 아동인 거지.(웃음)
- <청담보살>의 태랑과 박예진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스물여덟 해 동안 한 번도 연애를 못한 태랑처럼, 박예진도 연애에 있어서는 너무 조용하다. 정말 청정 구역에서 살거나, 정말 관리를 잘하시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다.(웃음)
놀 때는 열심히 놀았는데, 연애에 있어서는 20대에 하산을 못했다. 이제 20대 조금 남았는데, 이제라도 불살라 봐야 하나?(웃음) 스캔들이 날 만한 일 자체가 없었다. 비밀 연애를 잘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성격이 못 된다. 아예 20대에는 거의 연애를 못했다. 서운하지는 않다. 일하느라 바빠서 안 한 게 아니라, 정말 남자친구가 안 생겨서 연애를 못한 거다. 누가 내 이야기를 쑥덕거리는 게 싫어서 그런 기미를 차단했던 경우도 있다. 그건 내 성격이다. 아마 연기자가 아니었더라도 비슷했을 것 같다. 이런 문제에선 스스로에게 좀 엄격하다.(웃음)
- 일을 마치고 나면 여가 생활은 어떤가?
뮤지컬이나 연극, 무용 등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한다. 기회만 되면 한국에서 열리는 무대 공연은 다 찾아 본다. 지금 당장 내가 무대 위에 서진 못하더라도, 보면서 감정이 쌓이거나 남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러 장르, 여러 매체에서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보고 싶다.
- 혹시 무대 공연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나?
연극은 기회가 온다면 정말 해보고 싶다. 아직은 기회도 없었고, 나도 준비가 덜 됐다. 하지만 막연한 생각으로는 서른 살 정도에는 무대에 설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무대와 카메라 앞은 좀 다를 것 같다. 사실 드라마와 영화도 내겐 조금 다르다. 베테랑 배우라면 같은 연기겠지만, 내겐 매체 별로 조금씩 차이가 느껴진다.
- <청담보살>을 보면서 박예진이 카메라 앞에서 가장 편안하게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보다는 아주 조금 편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떨린다.(웃음) 그런데 주위 분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경험해서 그런지 카메라 앞에서 굉장히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말씀을 요즘 하신다. 사람들이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도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용기가 생긴 것 같다. 조금 더 용감해져도 좋을 것 같다.
- 앞으로의 10년에 대한 계획을 간단히 들려준다면?
앞으로 10년이면, 서른여덟 살이다! 꺄악.(웃음) 그 안에 결혼을 할 테고, 아이도 낳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좀 더 인간적으로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배우로서의 욕심은 그냥 열심히 하는 것 외엔 없는 것 같다. 제 나이에 맞게 살면서 연기하다 보면 깊이도 생기고, 사람들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면서 연기의 폭도 자연스럽게 넓어지지 않을까.
- 결혼이 가장 먼저 나온 답변이라 좀 놀랐다.
빨리 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10년 후라고 하니까, 30대에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다. 20대는 일에 빠져 살았다면, 30대에는 가정을 갖고 싶다. 30대가 젊음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나이로 살고 싶다.
- 이상형이 있다면….
이상형은 없느니만 못한 것 같다. 그대로 만난다는 보장도 없고, 주변을 보면 다들 이상형과 정반대의 사람들을 만나더라.(웃음) <청담보살>처럼, 사람 마음은 자기도 모르게 움직이니까. 미래를 예측하는 건 부질없다. 다만 인간 됨됨이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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