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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유럽 4國 "코리아 벨트"를 가다 [上.中.下]

CKwon 2006. 3. 22. 02:10

東유럽 4國 "코리아 벨트"를 가다 [上]

EU 생산기지…"이웃나라 형제공장이 라이벌"

인건비 서유럽의 5분의 1…10兆 투입 첨단설비 속속 가동
 
새해 한국기업들의 해외 승부처는 단연 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등 동(東)유럽 4개국이다. 줄잡아 100억달러(10조원) 이상이 이곳에 투자돼 한국기업 벨트가 곳곳에 형성되고 있다. 한국 브랜드의 디지털TV와 자동차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장밋빛 청사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몰리다 보니 인건비가 오르는 등 부작용도 만만찮다. 동유럽 투자의 명암(明暗)을 현지에서 살펴본다.
 

“삼성전자 슬로바키아공장의 경쟁자는 다른 회사가 아닙니다. 바로 삼성전자 헝가리공장입니다.”

슬로바키아 남부의 소도시 갈란타. 3년 전 방문했을 때 허름한 창고로 시작했던 삼성전자공장은 거대한 디지털 생산기지로 변했다. PDP와 LCD-TV는 물론, 프린터, 셋톱박스까지 모두 만들어 낸다. 167명이던 인력은 3258명으로 늘었고, 20대의 첨단 SMD(납땜하지 않고 인쇄회로기판에 전자부품을 붙이는 공정) 설비가 부지런히 돌아간다. 0.6초의 작업시간 단축을 위해 PDP 패널을 뒤집은 뒤 옮기지 않고, 다음 공정으로 옮기면서 뒤집도록 하고 있다.

공장 한쪽에 있는 셀(cell) 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한두 명이 사각형 공간에서 디지털TV 생산의 처음부터 끝까지 마무리짓는 방식. 60명이 달라붙는 일반 라인은 설치비가 15억원이 들지만, 셀 라인은 숙련된 작업자만 있으면 돼 생산성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종찬 대표는 “SMD와 셀 방식 등으로 매년 생산량은 12% 늘리고 사람은 5%씩 줄여나갈 방침”이라며 “동구의 인건비 상승 흐름에 대비하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지난 89년 현지에 진출한 삼성전자 헝가리 공장은 영국·스페인 공장도 옮겨와 부활시킨 곳으로, 헝가리에선 국민기업으로 대우받고 있다. 하지만 슬로바키아공장의 급성장에 자극을 받고 있다. 회사측은 처음 두 공장의 생산품목에 경계를 두었지만, 지금은 없앴다. 헝가리공장 홍준기 대표는 “새해에는 작년보다 3배 많은 120만대의 LCD TV를 쏟아내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서울 본사는 생산성 높은 쪽의 손을 들어주겠다는 방침이어서, 양 공장의 자존심 경쟁은 뜨거워지고 있다.

 

 

삼성은 헝가리의 전자·SDI·전기 공장과 슬로바키아공장에 이어, 폴란드 브로츠와프에다 백색가전공장도 짓는다. 이들은 2월 갈란타에 문을 여는 대지 5만평 규모의 물류센터와 4시간이면 연결되는 벨트가 된다.

작년 5월 동유럽이 대거 EU에 가입하면서 글로벌 기업을 따라 한국기업의 동유럽 진출도 급증하고 있다. 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는 서유럽과 가깝고 인건비는 5분의 1 안팎이어서 생산기지로 그만이라는 판단이다. 한국기업은 ‘거대한 생산 벨트를 구축하여 현지에서 모두 끝내고, 형제 공장끼리 경쟁을 붙인다’로 전략을 정했다. 공장끼리 부품조달과 납품망은 협조하되, 생산성에선 경쟁이라는 얘기다.

 

LG는 ‘폴란드 몰빵 벨트화’를 선언했다. 전자·LCD·화학·상사 등 계열사가 연일 폴란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바르샤바 북쪽 130㎞에 있는 므와바. 국도에 ‘므와바는 LG타운’이란 대형 입간판이 눈길을 당긴다. 3만여 주민들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기 주소를 모두 그렇게 고쳤다. LG 공장까지 들어가는 길은 ‘LG스트리트’로 명명됐다. 실업률이 18%나 되는 나라에 2200여 명의 일자리를 만들어준 데 대한 현지의 호의다.

 

지난 99년 현지업체를 인수한 LG전자는 작년 4월 제2의 TV공장을 착공, 4개월 20일 만에 축구장 5개 규모의 공장을 완공시켰다. 바르샤바에서 서남쪽 343㎞에 있는 브로츠와프에는 LG필립스LCD가 2011년까지 4억3000만유로를 투자, 올 상반기 초대형 공장을 착공한다. LG전자도 여기에 제3의 TV공장과 냉장고공장을 새로 건설, 므와바 공장과 벨트를 구축하면서 동시에 경쟁도 시킨다.

 

동유럽 4개국이 ‘유럽의 디트로이트’로 변하자 현대차그룹도 ‘제2의 울산벨트’를 조성하고 있다. 올해 현대차가 착공하는 체코 오스트라바와 기아차가 건설 중인 슬로바키아 질리나의 거리는 울산공장과 화성공장의 거리와 비슷하다. 11억유로가 투자돼 연산(年産) 30만대를 기록할 기아차 공장은 현재 건축공정 80%선. 곧 시운전에 돌입한다. 현대차 공장과 기아차 공장은 준(準)중형차로 현지에서 경쟁을 벌이게 된다.

국내 대기업의 벨트에는 협력업체도 동참하고 있다. 삼성공장 주변에는 삼일·기화정밀 등이, LG공장에도 동양전자 등 수십개 업체가 가동 중이다. 질리나에도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12개 협력업체가 공장을 지었다. 한국타이어도 현지 수요를 노려 헝가리에 투자한다.

KOTRA 오세광 바르샤바무역관장은 “모나미와 한국유리 등 중견업체들도 폴란드 등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면서 “중소기업들의 진출 문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갈란타,슬로바키아.므와바,폴란드 최홍섭 기자 [hschoi@chosun.com]

 


 

東유럽 4國 "코리아 벨트"를 가다 [中]
현지인 마음잡아 1등 잡았다
폴란드선 대우, 헝가리선 삼성, 체코선 LG…

자동차 안전벨트 제조업체인 운화실업. 대우차를 따라 폴란드에 진출했다가 그냥 눌러앉았다. 다른 부품업체들은 죄다 철수했으나, 고통을 견뎌가며 시장개척에 나섰다. 문전박대당한 기업을 수십 번 찾아갔고, 문의가 오면 밤중에도 샘플을 들고 달려가 현지 신뢰를 얻었다. 적자를 털어낸 지금은 100여명을 고용하고 매출액만 600만달러(60억원)에 달한다. 여느 외국기업과 달리, 체육대회·야유회로 직원들 마음도 잡았다. 운화실업은 공장이 있는 푸우투스크시(市)의 모범 외국기업으로 선정됐다.
 

동(東)유럽 4개국 사람들은 찬란한 문화전통으로 자존심이 강하고, 오랜 공산정권 통치로 피해의식과 저항심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현지 마케팅이든, 공장관리든 철저하게 현지화를 추진해야 성공한다.

마음을 잡아야 물건을 판다

폴란드 TV 시장에서는 대우일렉트로닉스가 1위(14.8%)다. 삼성·LG·필립스도 대우를 당하지 못한다. 백기호 바르샤바 공장대표는 “공장에서 매장에 제품을 직접 공급해 유통단계를 줄이고 가격경쟁력을 높였다”고 말했다. 대우차-FSO가 남긴 ‘대우’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친숙함을 최대한 활용, 곧바로 매장으로 진출한 것.

 

삼성전자는 5㎞ 단축 마라톤 행사인 ‘러닝 페스티벌’로 헝가리 국민기업이 됐다. 마라톤 선수였던 이스트반 팍스코 부장이 지난 95년 아이디어를 냈다. 첫해 8만명이 참가했고, 이후 폴란드 등지로 확산되어 수십만 명이 참가하는 국제축제가 됐다. 젊은이가 좋아하는 MP3 플레이어를 비롯, 시상품도 푸짐하다. 이스트반 부장은 “다른 외국기업은 국민들 스트레스 풀어 주는 행사를 기획하지 못했다”면서 “브랜드 인지도도 59.9%로 노키아(53.3%)와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체코 프라하 신(新)공항과 대통령궁에는 최근 LG전자의 LCD 및 PDP-TV가 대거 설치됐다. 이유가 있다. 3년 전 체코시장 진출 초기부터 ‘실세’ 리비아 클라우스 영부인이 세운 청소년 장학재단을 지속적으로 후원했다. 작년 11월에도 대통령궁에서 150만 코루나(7000만원)의 기부금을 전달하고 ‘LG자선 콘서트’도 개최했다.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는 2007년 준공을 목표로 ‘한국공원’이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 ‘올드보이’가 히트를 쳤고, 최근 한국산 온라인 게임도 진출했다. 현지공장으로 인한 한류(韓流) 효과가 생긴 셈이다.

 

자존심 살려주는 현지 공장관리

부다페스트 북쪽 괴드에 있는 삼성SDI 헝가리공장. 복도에 헝가리 출신 노벨상 수상자 13명의 얼굴과 함께 1개의 빈칸이 있다. ‘당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라’는 구절이 밑에 적혀 있다.
송익태 헝가리 법인장은 “헝가리인은 과학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스스로 생산목표를 정하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LG전자 므와바공장 노석호 대표는 성수기에도 직원들이 정시 퇴근하자, 현지인 간부를 모았다. “우리 주재원은 5년 뒤면 모두 떠난다. 여기가 한국 회사냐, 폴란드 회사냐. 당신들이 주인이다”라고 설득, 결국 지난해 7월부터는 토요일·일요일 근무도 시작했다. 폴란드에서는 이례적인 일. 요즘은 자원자가 넘친다.

부다페스트,헝가리.바르샤바,폴란드 최홍섭 기자 [hschoi@chosun.com]

 

東유럽 4國 "코리아 벨트"를 가다 [下]

섣부른 투자땐 낭패본다
부패한 관료주의.인건비 상승.열악한 인프라…

 

삼성전자는 지금 폴란드에 백색가전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지만 대외적으론 계속 “확정된 것이 없다”고 말한다. 현지신문에는 공장부지 사진과 함께 ‘1억 유로를 투자하고 1200명을 고용한다’는 기사가 크게 실렸다. 하지만 “투자를 결정했다”고 카드를 꺼내는 순간, 투자청에서 고자세로 변하는 다른 기업 사례를 자주 보았기에 삼성측은 계속 “검토 중”이라고 말한다. 동(東)유럽 투자는 거대한 EU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그렇다고 해외투자의 천국으로 생각하면 오해다. 아직도 관료주의가 여전하고, 인건비는 상승하며, 사회 인프라도 열악한 편이다.

 

투자유치 기관을 과신하지 말라
기아차와 한국타이어가 각각 슬로바키아와 헝가리에 투자하기까지 현지에선 매우 시끄러웠다. 유치에 실패한 나라들은 원색적인 비난을 했고, 슬로바키아와 헝가리도 우리 업체에 줄 인센티브를 낮출 움직임이다. 슬로바키아의 경우 기아차 유치에 앞장섰던 경제부장관이 재무부장관과의 파워 게임에서 밀려나며 문제가 불거졌다. 슬로바키아 경제부는 한국타이어에 대해서도 ‘투자규모의 21%인 1억 유로 정도를 인센티브로 제공한다’고 했으나, 반대측에서 ‘직간접 고용효과가 3000명에 불과한데 못 지킬 약속을 했다’며 시비를 걸었다. 이후 한국타이어는 인센티브를 10%로 낮춰 요구했으나, 슬로바키아측은 최대 6%를 제시하면서 결렬됐다.

조종호 수출입은행 폴란드사무소장은 “동유럽 투자만 하면 무조건 ‘어서 옵쇼’라는 자세로 반길 줄 알면 착각”이라고 말했다

여전한 관료주의와 부정부패
동유럽 4개국 투자기관들은 입으론 ‘원 맨 서비스’를 외치고 있지만, 공산통치 시절의 관료주의 벽은 여전하다. 세계은행이 155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설립때 거쳐야 하는 단계가 폴란드(10) 체코(10) 슬로바키아(9) 헝가리(6)는 선진국인 뉴질랜드(2)에 비해 훨씬 많다. 폴란드에서 창고건설을 위한 인·허가를 받는 데 322일이 걸린다. 가장 빠른 나라인 핀란드는 56일에 불과하다. 주폴란드 미국상공회의소는 미국기업인들에게 “폴란드가 장점은 많지만, 지도층부터 말단관리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부패 경향도 있다”고 지적했다.

 

계속되는 인건비 상승과 까다로운 근로자 관리
동유럽 근로자들의 숙련도와 성실도가 문제다. 체코 근로자들은 매일 평균 7%가 병가(病暇)를 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기업 진출이 급증하면서 지역에 따라 인력난도 심각하다. 삼성전자 헝가리공장은 보쉬가 인근에 공장을 세우면서 조기 가동을 위해 급여를 40%나 더 주고 삼성 공장의 엔지니어와 구매 인력을 빼내갔다. 삼성도 덩달아 올려줄 수밖에 없었다. 현대차(체코)와 기아차(슬로바키아) 공장은 벌써부터 인력난을 걱정하고 있다.

 

열악한 사회간접자본도 문제다. 폴란드는 주요 간선도로가 왕복2차로여서 대형 화물차가 아슬아슬하게 추월하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바르샤바,폴란드 최홍섭 기자 [hscho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