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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대 수준 커트라인, 20년 만에 서울 중위권 수준 떨어져

CKwon 2011. 10. 24. 07:55

[고사 위기 거점 국립대를 살리자] < 1 > 추락한 위상


신입생 학력저하

10년 전과 같은 수준 강의 내용… 전혀 알아듣지 못하기도 떠나가는 학생들

수도권 대학으로 편입 행렬… 졸업생도 대학원은 서울로 왜 약해졌나

수도권 집중화 심화 맞물려YS, 대학에 시장주의 도입… 사립대가 80%까지 늘어 "'강원대라, 이번에 부실대학으로 선정된 곳 아닌가요?' 면접관은 이 한마디를 내뱉고선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더군요. 그 학우는 결국 면접에서 떨어졌습니다."

 

↑ 지난달 교육과학기술부에 의해 구조개혁 대상으로 선정된 강원대학교 캠퍼스에 21일 정부 조치에 반발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춘천=조영호기자 youcho@hk.co.kr

21일 오후 7시 강원대 춘천캠퍼스 내 실사구시관 1층 강당. 좌석은 물론이고 계단과 문 앞 복도까지 빼곡히 채운 400여명 학생들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고 몇몇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떨구었다.

'지역 서울대'에서 부실대학으로

지난달 교육과학기술부가 강원대를 구조개혁 대상으로 발표한 이후 처음으로 열린 학생비상대책회의. 평가지표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교과부에 대한 분노를 쏟아낸 것도 잠시, 이내 깊은 침묵이 강당을 에워쌌다. 부실대학으로 낙인 찍혔다는 위기감과 두려움이 학생들을 짓누르는 듯했다.

이재철 강원대 부총학생회장은 "당장 올해 수시지원율이 지난해보다 줄었고, 인터넷엔 강원대 가도 괜찮은 거냐고 불안해하는 수험생들의 글이 떠다니고 있다. 아버지가 79학번 동문이라 아들인 내가 강원대에 입학한 것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셨는데 요즘은 학교 걱정에 밤잠을 설치신다"며 울먹였다.

도서관에서 만난 한 졸업반 학생은 "지난해 경춘선 개통 후 (수도권 대학으로) 편입 준비하는 친구들이 늘어 어수선했는데, 올해는 부실대학이라고 하도 떠들어대니 강원대 다닌다고 말하기도 조심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입학생 수준 갈수록 떨어져

지방 국립대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지방의 우수 인재들은 자기 지역의 거점 국립대로 몰렸다. 경북대를 나와 현재 우리나라 대표 대기업의 부사장에 오른 한 임원은 "조카가 집에서 가까운 경북대를 갈지, 커트라인이 높은 숙명여대를 갈지 고민이라며 묻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일보가 대입배치표를 분석한 결과, 1986년 학력고사 시절 부산대와 경북대의 전자공학과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전자공학과 다음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2007년 배치표에선 동국대와 건국대 그룹에 속했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거점 국립대의 위상이 20년 사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다.

신입생들의 학력저하는 교수들이 먼저 체감한다. 한 거점 국립대 공대 박모 교수는 "누군가는 10년째 같은 강의노트를 쓰는 교수를 문제삼지만 나의 경우 10년 전 자료는 쓰려야 쓸 수가 없다. 최근 입학한 애들은 10년 전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내용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허탈해했다.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지금은 전남대에 모교 출신의 교수들이 꽤 있지만 10년만 지나도 전무할 것"이라며 "자기 대학을 졸업한 연구자를 배출할 수 없다는 것은 삼류 대학으로 전락했다는 의미"라고 우려했다.

국립대 엑소더스, 학력세탁까지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총장부터 발 벗고 나서는 실정이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이름 난 국립대 총장님이 직접 서울로 올라와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을 끌어올 묘책을 알려달라고 상담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떠나가는 학생들을 붙잡기엔 역부족이다. 2년 전 충남대를 다니다 인하대로 편입한 A(24)씨는 "학부 때 못했으면 대학원만큼은 반드시 서울로 다녀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라며 "이제는 거점 국립대라도 지방대 출신으로는 대접받고 살기 힘들다 보니 학력세탁은 어쩔 수 없다"고 씁쓸해했다.

수도권 집중화와 사립대 난립

지방 국립대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경제 사회 문화 등 각종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시대적 변화와 맞물려 있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1980년대 이후 지방 공업단지가 사양길에 접어들고 지역경제가 고용능력을 상실하다 보니 좋은 일자리를 찾으려는 우수 학생들은 상경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방기한 정부와 학교도 위상추락을 자초했다. 정부가 고등교육을 시장논리에 맡기면서 국립대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백종국 경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95년 김영삼 정부가 대학설립기준완화, 대입정원자율화 등 경쟁원리를 앞세운 5ㆍ31교육개혁을 추진하면서 사립대학이 전체 대학의 80%까지 늘어났다"며 "등록금 책정 등 대학정책의 주도권을 사립대가 쥐고 흔드는 사이 국립대는 방치됐고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輸角橘?육성, 지역사회 씽크탱크 역할, 고등교육 기회 제공 등 지방 거점 국립대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며 "거점 국립대를 살려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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