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6시께(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룸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나타났다. 여느 때와 달리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는 별다른 얘기 없이 짤막한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
"민주당 내에서는 비록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공화당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정쟁 때문에 국민이 피해를 입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겨우 일으킨 경제가 다시 후퇴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국민은 실익이 없는 정쟁을 치르고 무의미한 승리나 챙기라고 나를 대통령으로 뽑지는 않았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파국 직전으로 향하던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타협을 이뤘음을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워싱턴포스트와 CNN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연소득 25만달러 이상(부부 합산) 고소득자를 포함한 모든 계층에 대해 2년 동안 감세 혜택을 더 연장하는 방안을 수용했다. 반면 공화당은 장기 실직자에 대한 실업수당을 13개월간 연장하기로 하는 민주당 안을 받아들였다.
'고소득자에 대한 감세 반대'는 시민운동가 출신인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지지세력에는 '신앙' 같은 어젠더였다.
2008년 대통령 선거운동 내내 주창했고, 지난 11월 초 실시된 중간선거에서도 내걸었던 구호다. 오바마 대통령은 줄곧 "국민 2%에 불과한 부유층에게 세금을 깎아준다고 경제가 살아나지도 않을 뿐 아니라 7000억달러의 재정만 줄어들 뿐"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하면서 문제가 꼬였다. 선거에서 이긴 공화당은 고소득층에 대한 감세 연장을 세차게 밀어붙였고, 급기야 지난 4일 상원에서 하원을 통과한 법안을 밀어붙이려던 민주당의 시도를 표대결에서 물리쳐 버렸다.
지난 4~5일 주말 내내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는 몇 차례 회의를 거듭했다는 후문이다. 자신들의 정책을 고수할지, 포기할지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공화당과의 타협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협상에 반발한 민주당 의원들을 달랬고, 과격한 당원들에게는 일일이 이메일을 보냈다.
비슷한 시점인 7일 저녁 서울의 풍경은 너무 달랐다.
11월 중순부터 한 달 가까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제자리걸음 논의만 진행되던 '소득세법' 감세 논쟁이 이날 다시 불붙었다. 의원들의 입장은 갈렸고 누구도 명쾌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7일 오전이 돼서야 1억원 이상 최고세율 구간 하나를 더 설정해 이 구간에 대해서만 기존 세율 35%를 적용하자는 안이 타협안으로 나왔다. 감세론자도, 감세 철회론자도 일단 격렬한 반대를 멈췄다. 타협의 희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 하나로 논의는 내년으로 넘겨졌다. "소득세 구간 신설안은 너무 옹색하고 원칙이 없다. 이렇게 결정하면 국민이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발언이었다.
그동안 감세를 철회한다, 유지한다 등의 논쟁을 벌이며 싸우던 국회는 결국 이 한마디에 논의를 내년으로 넘겼다. 연말이 되도록 침묵하던 사람들은 자신의 본분을 저버렸다. 정치적 이익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 됐다.
특히 7일 밤부터 8일까지 국회 본회의장 앞 풍경은 '대타협의 정신'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진입을 막으려는 민주당 당직자, 의원 보좌진들과 한나라당 당직자 및 의원 보좌진들 간 싸움은 2년 전 외신의 조롱거리가 됐던 '해머 국회'를 연상시켰다. 소파와 의자, 각종 집기들이 날아다니고 비명과 욕설이 난무했다.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은 깨진 유리와 흙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의 표정은 망연자실하거나 분노에 찼다. 의원들끼리, 보좌진들끼리 멱살잡이를 하는 모습 속에서 주권자인 국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반드시 예산을 회기 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여당의 '원칙주의'와 임시국회를 열어서 충분히 심의를 더 해야 한다는 야당의 명분은 일견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 처리 방식은 일말의 동정조차 얻기 어려웠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본회의장 유리는 박살이 났고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비효율적이더라도 천천히, 타협과 대화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정치의 본질은 12월 여의도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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