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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오죽했으면 이 밤에 애 둘러업고 나왔을까”

CKwon 2008. 5. 30. 22:27

 

밤 공기 속으로 평화행진 인파의 함성이 북소리처럼 어둡고 장엄하게 울려퍼졌다.
"협상 무효, 고시 철회."

 

 

밤 늦은 시간까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행진 선두에 섰던 엄마들과 아이들의 모습이 바람에 나부끼는 꽃잎처럼 애처로웠다. 유모차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는 어린애들과 애기 엄마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나는 처음 보았다. 오죽했으면 이 깊은 밤에 애 둘러업고 나왔을까. 누구라도 탄식과 걱정 속에서 참다 못해 뛰어든 22번째 촛불평화시위단을 보면 광우병 쇠고기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피부로 절절히 느꼈을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새 수입위생조건을 담은 장관고시가 지난 29일 발표된 후 국민이면 누구나 끌어안고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대학생, 회사원, 중년의 여인과 노인들, 먼 타지에서까지 온 10대 여학생들, 경찰과 대치해 혹시나 사고날까 걱정되어 긴 띠를 만들어주던 예비역 형님부대까지 온국민의 여망을 담은 가두행진 행렬들과 함께 한 나는 감동과 염려와 슬픔 속에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국민이면 누구나 끌어안고 통곡하고 싶었으리라

시청·소공동·을지로·종로·청계천광장으로 가는 엄청나게 많은 촛불시위행렬 속에서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떠올렸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오가지 않을 뿐이지 국민의 여망을 담은 행렬은 진지하고 뼈아프고 절실했다. 분명 민주주의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과연 대통령과 정부 책임자들의 정치의식, 생태환경의식은 얼마나 성장했는지 묻고 싶다. 근근이 먹고 살기도 힘든데 비실용적이고 어리석은 졸속 협상으로 불안감을 가중시킨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의 태풍 같은 분노에 대해 얼마나 가슴 깊이 귀기울이고 있을까. 기본 생존권도 못지키는 대통령과 협상 참여자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희망할 수 있을까. 언제 정부가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여 정책을 이끌어간 적이 있던가. 이제라도 제대로 된 미래 비전을 보일 순 없을까. 과연 미국산 쇠고기를 입에 대기나 할는지 모르겠다.

풀을 먹고 사는 소에게 쇠고기 찌꺼기를 먹이는데 왜 소가 미치지 않겠는가. 사람에게 인육 찌꺼기를 먹이는 것과 뭐가 다르랴. 소가 광우병에 걸리게 만든 인간들인데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고 광우병에 걸리는 건 당연한 이치이리라. 소는 영혼 없는 먹잇감으로만 되어버렸다. 광우병 사태 이후 셀 수도 없이 많은 소들이 불태워지고 버려졌다. 모든 생명체의 건강 조건은 깨끗한 토양, 좋은 공기, 맑은 물이며 그 속에서 자연의 순리를 따른 먹거리여야 한다. 그 옛날 히포크라테스도 "당신들의 식품이 당신들의 치료약이어야 하고 당신들의 치료약이 당신들의 식품이어야 한다"고 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위정자들은 현실을 못 읽고 공부 않는 타성에 젖어있다.

이를 보고 통탄하는 거대한 촛불행렬이 심상치가 않았다. 단체별로 벌이는 시위와는 달리 온 국민 모든 계층의 자발적인 참여라는 점이다. 광우병 쇠고기의 수입으로 터져나온 분노지만 그 안의 속뜻은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우리는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촛불 하나하나에 환경의 세기를 역행하는 대운하 건설이란 한심한 정부정책에 대한 걱정과 깊은 회의가 깔려있다. 이는 언제나 자리다툼이 먼저인 소인배 정치에 대한 개탄, 절규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가난해도 진정한 마음의 풍요를 얻어 행복하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스며있다. 국민은 거대자본의 논리로 무장한 비인간적인 행태가 되풀이되는 삶을 바꿔내 제대로 잘 살기 위한 평화의 작은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미래의 삶을 꿈꾸는 희망의 먹거리에 대한 고뇌와 그 해결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는 절박한 소원이다.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면서까지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세력에 대한 자연의 보복은 가난한 일반 서민에게 가장 피해를 준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중년 여인·노인들까지 태풍같은 분노의 행렬

영국 농부의 수입은 광우병과 구제역 위기로 5년 사이 60%나 감소했다. 땅은 지나친 화학 비료살충제로 망가지고 지하수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광우병, AI 등 온갖 질병이 만연하여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는 계속 늘어난다. 이 상태로 가면 농부가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과잉대량 생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굶는 사람들이 늘고 엄청난 생물종의 소멸, 고갈되는 화석연료로 인해 치솟는 물가, 사회와 경제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겉으론 평화롭지만 이미 자원전쟁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최루탄·화염병만 없을 뿐 80년대 민주화운동 떠올라

자연법칙과 환경파괴로부터 얻은 이득이 크면 클수록 자연의 보복은 가혹하다. 대량생산, 대량사육이 단기간 돈을 벌게 해줄지 몰라도 멀리 보면 패망의 지름길이다. 자연 법칙을 존중한 생태농축산업만이 광우병 쇠고기 문제를 해결할 참된 방법이다. 이를 깊이 헤아려 협상에 철저히 대처했다면 광우병 쇠고기 수입 허가 문제를 더 신중하게 처리했을 것이다. 반인륜적으로 대량 생산한 광우병 소를 약소국가에 팔아 경제 이득만을 노리는 미국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피해 당사자인 우리가 먼저 깨어나 바뀌어야 한다.

광우병 위기로부터 우리는 무얼 느끼고 배우나.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물결 속에서 우리의 다짐과 실천은 무엇인가. 나는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돌아가 살피련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는 생명의 존귀함을 잊어서 생긴 일종의 환경재앙이다. 동물에게, 소에게 영혼이 있음을 잊은 대가다. 무조건적인 인간 본위의 환경 시스템을 다시 살피지 않고서는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 매일 산처럼 쌓이는 쓰레기를 줄이지 않는 한,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여름이 오기도 전에 에어컨을 틀어대는 기본생활습관부터 달라지 않는 한 더 큰 재앙을 맞을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졸속 협상의 뼈아픈 반성과 사죄와 신중한 쇄신이 없으면 대통령은 탄핵 받아야 마땅하다. 광우병 사태라는 우울한 현실위기를 기회로 삼고 재협상을 유도하여 국민생명을 지켜가는 현명한 정부이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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