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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여고생은 어쩌다 美 총기규제의 상징이 됐나

CKwon 2018. 3. 26. 23:10


지난달 14일 미국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라스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자이자 총기규제 운동가로 변신한 엠마 곤잘레스가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총기규제 촉구 시위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17살의 여고생 에마 곤잘레스. 쿠바 이민자 가정 출신의 평범한 미국 고등학생이었던 그녀가 불과 한 달 사이 총기규제를 촉구하는 시민운동의 상징이 됐다. 워싱턴정가에서 가장 막강한 로비력을 가졌다는 전미총기협회(NRA)와 벌이는 힘겨운 싸움, 곤잘레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은 지난달 14일 발생했다.

그날 오후 2시께 휴양지로 유명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북쪽으로 약 70㎞ 떨어진 파크랜드에 위치한 마조리 스톤맨 더글라스(MSD) 고등학교에 총기를 든 괴한이 난입했다. 용의자는 이 학교에 다니다 교칙 위반으로 퇴학당한 니콜라스 크루즈.

크루즈는 반자동 소총 AR-15를 이용해 단 6분 20초 만에 17명을 살해한다. 부상자도 15명에 달했다. 범행을 마친 크루즈는 총기를 버리고 혼란을 틈타 학생들 틈에 섞여 도주했다. 이후 1시간가량 거리를 배회하다 체포됐다.

총격 당시 곤잘레스는 학교 강당에 다른 학생 수십 명과 함께 있었으며, 도망치지 않고 경찰이 오기 전까지 2시간 동안 다른 학생들의 대피를 도왔다.

곤잘레스와 살아남은 학교 친구들은 슬픔에 젖어 뒤로 물러서기보다 앞으로 나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길을 선택했다. 총기 난사 3일 후 포트로더데일에서 열린 총기규제 시위에 나와 총기규제 필요성을 역설하며 법을 바꾸겠다고 선언한다.

"우리가 총기 난사 사건의 마지막 희생자가 돼야 한다"는 곤잘레스의 울음 섞인 외침은 곧 큰 반향을 일으켰고, 10대 청소년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도화선이 된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곤잘레스의 연설은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등장한 총기규제에 대한 맹렬한 지지를 상징했다"고 전했다.

'네버 어게인 MSD'라는 총기규제 단체를 조직한 곤잘레스는 CNN방송에 출연해 NRA 대변인과 논쟁을 벌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머리가 너무 길다"면서 삭발도 했다.

지난 24일에는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을 주제로 열린 총기규제 시위에서 수십만 명 앞에서 또 한 번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곤잘레스의 이날 연설 시간은 6분 20초, 정확히 마조리 스톤맨 더글라스 고등학교에서 총격이 진행됐던 시간과 일치했다. 곤잘레스는 연설의 4분 1 동안 희생자 17명의 이름을 차례차례 불렀으며, 나머지 시간은 '침묵'으로 채웠다.

짧은 침묵의 시간 동안 수십만 명의 사람들은 희생자를 추모하고, 총기규제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대로 둘 순 없다', '함께 세상을 바꾸자' 등의 메시지가 적인 팻말을 든 시민들은 곤잘레스에 응원의 박수를 보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날 곤잘레스는 "다른 사람의 일로 넘기기 전에, 당신 자신의 삶을 위해 싸우라"라는 말로 연설을 끝냈다. 이후 시위대는 의사당 인근에서 2.5㎞가량 떨어진 백악관 인근까지 행진하며 총기규제를 촉구했다. 이날 뉴욕과 애틀랜타 등 미국 내 800여 개 도시에서도 비슷한 행진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곤잘레스와 그의 친구들의 총기규제 노력이 결실을 볼지는 미지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의 주요 인사들이 여전히 총기규제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1999년 4월 13명이 숨진 콜로라도 컬럼바인 고교 총격 사건 이후 20년 가까이 총기규제 논란이 이어져 왔지만 바뀐 것은 거의 없다.

이날 시위가 벌어지던 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곤잘레스의 학교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도 되지 않는 자신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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