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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국정연설, 미국식 민주주의 '압축판'

CKwon 2014. 1. 29. 18:52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집권 2기 두번째 국정연설을 한 연방의회 하원 본회의장은 미국식 현대 민주주의의 '압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행정부를 대표한 오바마 대통령이 올해의 국정 청사진을 제시했고, 입법부의 상·하원의 여야 의원들은 박수와 함성, 때로는 야유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했고, 대법관들은 침묵으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과시했다.

 

 

↑ 오바마 대통령, 신년 국정연설 (AP=연합뉴스)

↑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신년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특히 집권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 오바마케어, 이민개혁 정책, 대(對) 이란 정책 등 사사건건 정책 현안을 놓고 오바마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던 공화당 의원들도 이날만큼은 최고 지도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우를 갖추면서 초당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 미국 주요 인사 총출동 =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시작되기 1시간 전부터 하원 본회의장은 '주인'인 여야 하원의원들로 가득 찼다.

이후 방청객들이 본회의장 2층의 양 측면과 뒤편으로 속속 입장했고,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준비된 연단 위에는 기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행사 20분 전 '손님'인 상원의원들이 조 바이든 부통령 겸 상원 의장을 필두로 '주인'인 하원의원들의 박수와 함성 속에 등장했으며,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와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각각 군복과 법복을 입은 채 속속 입장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2층 측면 방청석의 VIP석에 들어설 때는 여야 상·하원 의원들일 일제히 일어나 박수와 환호로 '퍼스트레이디'를 맞이해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존 케리 국무장관, 제이컵 루 재무장관, 척 헤이글 국방장관 등 각료들과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등 백악관 참모들이 뒤를 이었고, 예정시간보다 약 10분 늦은 오후 9시 10분께 오바마 대통령이 상·하원 지도부를 뒤로하고 입장하면서 본 행사가 시작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입장할 때는 참석자 전원이 일어서서 4분 가까이 박수와 환호를 쏟아냈다. 유일하게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은 건 취재기자들이었다.

◇ 박수 98회, 기립박수 45회 =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진행된 약 65분간 연방 의회 의사당에 울려 퍼진 박수는 무려 98번이었다. 이 가운데 45차례는 전원 혹은 일부 의원들의 기립 박수였다.

의원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가운데 일자리창출, 여성의 역할, 군(軍) 장병에 대한 치하 등이 언급될 때는 소속 정당과 무관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연발했다.

그러나 오바마케어, 에너지정책 등과 관련한 대목에서는 주로 오른편에 자리 잡은 민주당 의원들은 큰 박수를 보냈지만 공화당 의원들은 호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이날 오바마 대통령을 공식 소개한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때때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아 옆자리에 앉아 시종 특유의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인 바이든 부통령과 대비됐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포괄적 이민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할 때는 이민자 유권자가 많은 캘리포니아주 지역구의 일리애나 로스-레티넌(공화) 하원의원이 기립박수를 보낸 반면 옆자리에 앉은 같은 당의 미셸 바크먼(미네소타) 하원의원은 얼굴을 찌푸려 눈길을 끌었다.

이란에 대한 추가제재 법안이 통과되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경고한 대목에서는 일부 야유가 터져 나왔으며, 오바마케어와 관련한 농담에는 폭소가 이어지기도 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입장하고 퇴장할 때와 아프가니스탄 부상 장병을 소개할 때를 제외하고는 전혀 의원들의 박수와 환호에 동참하지 않은 채 근엄한 표정으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주장'했다.

뎀프시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도 정책 관련 연설 내용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군에 대한 언급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 아프간 부상 장병에 전원 갈채 = 이날 국정연설의 또다른 주인공은 아프가니스탄전쟁에 참전했다가 노상 폭탄이 폭발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긴 코리 렘스버그 중사였다.

'1등석'으로 꼽히는 미셸 오바마 여사의 옆자리에 앉은 렘스버그 중사는 불편한 몸 때문에 부축을 받고 입장했으나 의원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지자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또 한쪽 손을 다쳐 박수가 불가능했던 그는 대신 다른 한쪽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여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연설 내내 박수 소리를 내지 않았던 대법관들까지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 마지막부분에 렘스버그 중사를 소개하자 일제히 일어나 손뼉을 치기도 했다.

이날 연설에는 또 북한에 장기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 씨의 어머니인 배명희 씨와 여동생인 테리 정 씨가 찰스 랭글(민주·뉴욕) 하원의원의 주선으로 초청됐다.

또 공화당 의원들은 오바마케어로 피해를 본 지역구 주민들을, 민주당 의원들은 혜택을 본 유권자들을 각각 초청했다.

◇ 기자들에 테러 대응요령 교육 = 미국의 주요 요인들이 사실상 모두 집결한 행사인 만큼 이날 의사당 주변의 경비는 삼엄 그 자체였다.

경찰이 인근 도로를 모두 폐쇄하는 바람에 상당한 거리를 걸어서 의사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기자는 통로마다 서 있는 경찰과 비밀경호국(SS) 요원들에게 의회 출입증과 국정연설 취재 허가증을 보여줘야만 했다.

기자실에 모인 100여명의 내외신 기자들은 본회의장에 입장하기 전에 국정연설 중 테러 등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응 요령과 탈출구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행사장에서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사진 촬영이나 녹음이 일절 금지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모두 끝난 뒤에도 인근 도로는 물론 백악관으로 향하는 주요 간선도로가 모두 폐쇄되면서 가뜩이나 눈길에 거북이 주행을 하던 차량들로 일대가 '주차장'으로 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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