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건 폭발이 아닙니다.” 게스트로 출연한 교수의 발언이다. 일순간 아나운서는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폭발이 아니라고요? 3월 12일 오후, 뉴스 속보 화면에는 멀리서 잡은 후쿠시마 원전 1호기 격납건물 지붕이 날아가는 장면이 반복해 나오고 있었다.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발전소가 터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생성된 수소가스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빠져나오면서 벌어진 ‘외벽 손상’ 현상이다. 그러니까 노심이 폭발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원전이 폭발했다고 할 수는 없다. 요컨대 ‘폭발’의 개념이 다른 것이다.
이튿날, 3호기에서도 1호기와 거의 비슷한 현상이 관측됐다. 곧이어 2호기의 감압설비가 고장나면서 이번에는 폭발음도 선명하게 잡혔다. 더 큰 문제는 ‘계획예방정비’를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정지되었던 4호기에서 나타났다. 사용후 연료 저장조 냉각에 실패하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대재앙의 서곡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에 닥칠 최악의 쓰나미는 3m?
3월 15일 정부종합청사.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일본 도호쿠 대지진과 원전 사고에 따른 국내 원전 안전 및 환경방사능 영향’이라는 주제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철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은 “이번 후쿠시마 원전의 고장은 작동해야 할 긴급 원자로 냉각장치(ECCS)가 작동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진이 일어나면 원전의 운전은 자동으로 정지된다. ECCS는 말하자면 최후의 안전판이다. 그런데 그게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의 한 관계자는 “아직 일본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쪽으로부터 정확한 자료는 공유되고 있지 않지만, 원인은 쓰나미 때문인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즉 쓰나미로 흘러들어간 물이 장치를 고장낸 것이다.
한국은? 윤 원장은 “한국은 원자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최대 지진을 고려해 여기에 여유도를 더해 설계했으며, 쓰나미의 경우도 이미 발생했거나 예측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쓰나미를 고려해 부지설계를 했다”고 말했다. 원자력안전기술원 측이 시뮬레이션한 최대 쓰나미 파고는 “울진 원전이 3m이며, 기타 원전은 1m 이하”라는 것이다. 기자는 윤 원장에게 시뮬레이션 수치의 근거가 뭔지를 물었다. “일본 서해안에서 7.9에서 8.9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나쁜, 최악의 쓰나미가 한반도 동쪽에 오는 경우이며, 수중지형 등을 고려했을 때 파고가 현재 원전이 있는 울진에 3m로 오는 것으로 추정한 것”이라는 게 그의 답이다. 그런데 지진이 일본 서해안에서만 일어나라는 법이 있을까.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혹은 한반도가 진앙지인 지진이라면?
오창환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각 대륙판의 경계지역에서 지진이 많이 일어나며, 일본과 달리 한국은 판의 내부에 있어 지진과 같은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금까지 관측한 데이터로는 우리나라에서 5.2 이상 강도의 지진이 일어난 적은 없지만 문제는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기록된 5.2 이상의 지진은 없지만, 역사지진 즉, 기록된 문헌을 근거로 추정해봤을 때는 얼마든지 그 이상의 지진이 과거에는 있었다는 주장이다. 6.5 강도의 지진이 일어난다는 전제로 만들어진 내진설계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후 한국 정부와 원자력업계는 한국 원전의 안전성을 주장했다. 원자로 내부에서 물을 끓여 수증기를 만드는 비등경수로(BWR)인 후쿠시마 원전에 비해 한국의 원전은 모두 원자로 밖의 증기발생기에서 수증기를 만드는 가등식(PWR)이다. 격납건물 안에서 국부적으로 발생하는 수소를 점화시키는 ‘이그나이트’ 장치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과 같이 수소폭발로 격납건물이 날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등등.
3월 17일 환경재단과 환경운동연합은 일본 대지진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열린 토론회에는 ‘찬성 측’ 섭외가 쉽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기자가 과거 ‘원전’ 관련 취재를 할 때 원자력 업계나 학계에서는 환경단체나 그쪽 전문가들을 ‘재야’라고 불렀다. 당시 한 원자력 관련 연구소 직원은 소위 ‘재야’ 쪽 사람들에 대한 불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안전이라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람들의 말을 다 들어주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자료를 주면 무조건 부정적으로 폭로해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 그 사람들의 특기가 아니냐.”
17일 열린 토론회 자리에서도 이 ‘불신’은 되풀이됐다. 이은철 서울대 원자력핵공학과 교수는 말했다. “사실 오늘 각오하고 나왔다. 항상 드리는 말씀이 보는 시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손등에 피가 났으면 원자력 하는 사람은 이 정도는 작업하는 데 이상이 없으니 사고 취급을 안 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큰일이 났군요’ 식의 반응이다.” ‘옷에 묻은 방사능은 툭툭 털면 된다’는 그의 발언은 트위터 등을 통해 중계되어 회자되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식핵(食核)론자, 즉 핵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안전불감증이 문제”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일반인들이 안전불감증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른바 정책을 결정하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안전성이라는 신화에 취해 아무 문제 없다는 식으로만 말하는 것은 정말 문제이지 않나.”
원자력업계 vs. 환경단체 ‘불신’
이번 문제가 생긴 후쿠시마 제1원전은 지난 1971년에 건설된 원자로다. 일반적으로 원자로의 수명은 30년으로 알려져 있다. 예정된 가동기간을 넘겨 운영된 것이다. 만들어진 지 40년이 지난 ‘노후 원자로’라는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일본은 벌써 도카이(1988년), 후겐(2003년) 등 두 개의 핵발전소가 폐로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전국에서 운영 중인 20기의 상업용 원자로 중 아직까지 폐로된 경우는 없다. 1987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원자로 1호기의 원래 수명만료 연도는 2007년이다. 하지만 현재 10년 더 계속 연장 결정을 받아 운행 중이다.
그 다음은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월성 1호기다. 2012년 수명만료 연도를 앞두고 올해 계속운전 여부에 대한 결정이 내려질 예정이다. 윤창기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수석 부위원장은 원자력 부분에서만 20년 이상 일해 온 베테랑이다. 그는 말한다. “사실 양심적으로 말하는 건데, 어찌됐든 연장의 당위성이 나오는 까닭은 고유가 때문이 아닌가. 새로 짓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수명연장도 사실 돈이 무제한적으로 들어가는 사업이다. 돔을 만들 때 쓰는 콘크리트도 원자력발전소용은 특수등급이다. 강도나 수명은 사실 40년이 넘는 것이다. 수명연장을 해도 그 안에 증기발전기, 가압기 모두 교체한다. 월성 같은 경우 원자로 튜브 자체를 교환한다. 사실은 껍데기는 그대로 있고, 내용물은 전부 새 거를 가지고 와서 교체를 하는 것이다.”
가동연장을 하는 이유는 신규건설 등에 따른 부담도 원인이 된다. “원전을 지을 때 중요한 것은 반경 몇 ㎞ 이내에 방사능 누출의 위험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이 대피하고 소개할 수 있는 데 지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테면 서울 주위에는 지을 수 없다. 자동적으로 오지를 찾아갈 수밖에 없고, 또 신고리 원전처럼 새로 짓는 경우에도 다른 곳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이유다.”
‘계속연장’을 결정하는 것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검증을 통해서다. 양이원영 환경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문제는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민간단체를 배제할 뿐 아니라 위원회에 참여하는 전문가 중 비판적인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고리 1호기가 결정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지금 계속연장될 것으로 예측되는 월성 1호기의 경우도 그 과정을 외부에 밝히지도 않고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번 후쿠시마 사태를 거치면서 화제를 모으는 글이 있다. 일본원자력발전소 현장에서 일했던 히라이 노리오(平井憲夫)가 1995년 발표한 ‘원자력발전의 실상을 알린다’라는 글이다. 2년 후 그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과 관련, 그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예를 들어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발전소에서는 원자로에 철사를 빠뜨린 채 운전하고 있다. 조금만 잘못해도 세계를 휩쓸 대형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원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외부에서 보기에는 흰 가운을 입고 일을 하니 전문가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농부나 어부가 일거리 없는 겨울철에 들어와 일을 하기도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의 증언은 그동안 ‘원전선진국’ 일본의 이미지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
사실일까. 일본에서 원자력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장정욱 마쓰야마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에는 ‘원발(原發)집시’라는 표현이 있다”고 말했다. 즉 떠돌아다니는 집시처럼 비전문가로 원자력발전소 일에 투입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실제 외국인노동자가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장 교수의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윤창기 한수원노조 수석부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인력 자체는 수준이 높다. 직원의 50% 이상이 2000년 이후 사번을 갖고 있는 젊은 인력이며, 현재도 연간 수백명의 인력이 신규로 들어온다. 문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선진화정책이다. 윤 부위원장은 “공무원들은 사실상 어렵고, 제일 손대기 좋은 곳이 공기업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벌써 정원의 13%를 줄여 외주화했다. 윤 부위원장은 “울진 1, 2호기에서 교대근무를 12년간 했는데, 당시 20여명이던 인원이 현재는 10명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다. 원자력법에 1년에 두 번 필수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다. 모의조종실에 가서 가상사고에 대한 훈련을 하는 것이다.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어떤 형태든 상황이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 목적인데, 문제는 사람이 너무 적다보니 필수 교육만 가도록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력은 줄어드는데, 신규 기술이 도입되어 적용되면 업무강도가 늘어나 사고의 위험이 상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일본 원전 전 현장감독의 폭로 ‘충격’
3월 18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새로운 시각에서 총체적인 국내 원전 안전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다양한 민간전문가들을 균형있게 포함하고 정밀진단이 필요한 원전에 대해서는 가동중단 조치도 검토할 방침”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환경연합은 “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 조치지만 이제라도 시작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원자력 발전 안전 문제는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민관기구에는 정부·민간단체의 전문가만이 아니라 지역주민과 시민대표, 국회의원, 시민단체 대표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설비의 검토뿐 아니라 건설도 문제다.
진상현 경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사실 지금까지의 원전건설 관련 결정과정을 보면 과연 토론의 자세가 있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과거 기술관료들을 중심으로 국가에너지 계획을 세우면서 2020년까지 12개 원전을 신규로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내가 아는 한 국민과의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원래 정부는 올해 4월까지 신규 원전건설 부지를 확정 발표할 계획이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현재 원전이 건설되어 있는 울진과 인근의 영덕·삼척 등이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였다. 해당지역의 한 언론계 인사는 그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그 지역들이 울진 옆에 있다보니 매년 들어오는 천문학적인 돈이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하겠다고 난리였다. 그런데 이번 사건이 났다. 아마 지역여론도 상당히 달라질 것 같다.”
후쿠시마 원전 재앙이 어떻게 마무리되든 일본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정부 원자력 정책의 전면적 재검토는 불가피하게 되었다. 3월 17일 토론회 모두발언에서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났을 때 혹자는 사회주의 사회의 폐쇄나 통제, 비밀주의 때문에 어마어마한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개혁개방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체르노빌 사고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소련의 핵발전소와 자본주의 시스템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하다며. 나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안전하다고 하지만 핵발전소 원리는 다르지 않다’고.”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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