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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시대' 8년.."그것은 혁명이었다"

CKwon 2010. 12. 31. 09:37

 

 

북동부 오지에서 온 이주자, 땅콩팔이.구두닦이 소년, 도시의 그늘을 전전했던 금속공장 노동자,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노동운동 지도자..

31일 퇴임하는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에게 붙어 있던 수식어다. 그러나 룰라는 브라질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비중 있는 인물의 하나라는 찬사 속에 8년 임기를 마치고 있다.

퇴임을 코앞에 두고 나온 성적표는 경이롭고 화려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룰라의 개인 지지율은 87%, 룰라 정부에 대한 긍정평가는 80~83%였다. '레임덕'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지난 2003년 1월 1일 취임식에서 했던 "과거와는 다른 브라질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켜낸 룰라에게 전 국민이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룰라가 집권한 2003~2010년 사이 브라질은 말 그대로 몰라보게 달라졌고, 그것은 브라질 역사에서 하나의 '혁명'으로 받아들여졌다.

◇ 성장과 분배..두 마리 토끼를 잡다 = 브라질 경제는 지난 8년간 연평균 4%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룰라 이전 정부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것이다.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는 7.5~8% 성장이 기대되면서 중국이나 인도 못지않은 고성장을 구가할 것으로 보인다.

8년간 1천400만~1천5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졌고, 외환보유액은 집권 초기보다 10배 많은 3천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진 빚을 일찌감치 갚으면서 만성 채무국이었던 브라질을 채권국으로 돌려놓았다.

또 저소득층에 생계비를 지원하는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와 빈민들에게 식량을 무상공급하는 '포미 제로'(Fome Zero, 기아 제로), 최저임금의 지속적인 인상 등 사회복지정책을 통해 2천800만명을 빈곤에서 구제했고 3천600만명을 중산층에 편입시켰다. 그 결과 중산층 비율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서면서 브라질은 '중산층 국가'가 됐다.

지난 8년간 룰라가 이룬 성공신화의 비결은 '성장과 분배의 조화'라는 짧지만 강렬한 표현으로 요약된다. 룰라 대통령 자신도 90%에 육박하는 지지율이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킨 결과"라고 말한다. 떴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날지 못하는 닭의 날갯짓'에 비유됐던 브라질 경제에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를 걸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 전 국민의 지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 역시 룰라의 성공 요인으로 빈곤.기아 퇴치, 경제성장, 고용창출 등을 꼽고 있다. 룰라는 빈곤.기아 퇴치를 "노동운동가 시절부터 정치생활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고 강조했다.

◇ 소통과 통합의 정치 = 룰라는 스스로를 '변신의 귀재'라고 말한다. 아마도 오랜 노동운동과 정치활동 과정에서 터득한 경험의 결과일 것으로 보이는 이 말은 브라질의 정치판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좌-우파의 대립보다는 양측을 아우르는 새로운 정치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룰라의 변신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부터 예고됐다. 섬유업계 재벌인 조제 알렌카르러닝메이트로 삼는가 하면, 집권한 뒤에는 미국 보스턴 은행 출신인 엔히케 메이렐레스를 중앙은행 총재로 앉혔다. 의회 내 소수당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좌파와 중도좌파, 중도우파 10여 개 정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했다. 극단적인 좌파 또는 우파 정당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정당과 정책연합 관계를 구축하면서 '소통과 통합의 정치'라는 틀을 만든 것이다.

화합의 정치는 정책에도 그대로 반영되면서 중도실용 노선을 낳았다. 과거 3번의 대권 도전 실패 요인이 됐던 은행 국유화, 외채 동결, 토지 개혁, 거대 언론에 대한 통제 등 급진적이고 과격한 내용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룰라의 이런 모습에 대해 좌파 진영에서는 적지않은 불만을 터뜨렸다. 룰라의 정치적 기반이기도 한 빈농단체 토지 없는 농민운동(MST)이 "룰라는 분명 우리의 친구이지만 우리의 적의 친구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점진적 개혁에서 브라질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는 룰라의 입장은 완강했다.

룰라가 집권 8년간 고집스럽게 추구해온 이 같은 가치에 대해 지금은 진보와 보수 진영 양쪽 모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정치.경제.사회적 성과와 함께 변방에 머물던 브라질을 국제무대의 전면에 내세운 룰라의 위업에 대해 일제히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 남은 과제는 다음 정부의 몫 = 룰라 시대가 저물어가면서 브라질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룰라 정부의 빛과 그림자를 조명하고 있다. 대체적인 평가는 경제.사회 분야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보건위생 및 치안, 교육 등 민생 분야에서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브라질에서는 연간 100만명의 뎅기열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전반적인 교육 수준은 주요 65개국 가운데 50위권에 머물고 있다. 리우 데 자네이루를 비롯한 대도시 범죄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정치권의 부패.비리도 룰라의 성공 신화를 퇴색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집권 노동자당(PT)과 정부 인사들의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온 지난 2005년 룰라의 지지율은 30% 아래로 추락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룰라는 지난 2006년 재선에 성공한 뒤 조세제도와 정치개혁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으나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브라질은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고 있으면서도 연방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은 중.대 선거구 제도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를 혼합하고 있다. 정당의 존립은 유효득표율 2%만 넘으면 가능하다. 정당 난립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전형적인 구조다. 이 때문에 27개에 달하는 정당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정강정책이나 이념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다 보니 소속 정당을 쉽게 바꿔버리는 '철새 정치인'들이 많은가 하면, 돈을 받고 법안을 심의 통과시켜 주는 일도 잦았다.

브라질의 역대 대통령과 여당은 민감한 법안을 통과시킬 때는 의원들을 금품으로 매수하거나 정부나 공기업의 고위직 제공, 지역구 예산 늘려주기 등으로 거래를 해야 하는 등 많은 비용을 치러야 했다. 룰라는 부패와 비리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이런 구조를 깨고 싶었던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브라질 헤알화 가치의 고평가와 이로 인한 제조업 경쟁력 약화,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복지 확대에 따른 재정 부담 등이 풀어야 할 숙제다.

룰라의 퇴임으로 이런 문제들은 이제 1월 1일 출범하는 브라질 사상 첫 여성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정부의 몫으로 남겨지게 됐다.

◇ "박수 칠 때 떠난다" = 룰라는 지난 23일 TV와 라디오를 통한 고별 방송에서 자연인으로 돌아가 '시민 룰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4년 대선을 포함해 어떠한 선출직 공직에도 나설 계획이 없으며, 이제부터는 호세프의 재선을 위한 지원 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헌법은 대통령의 3선 연임을 금지하고 있으나 대선을 한 차례 이상 건너뛴 뒤 출마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범국민적 지지를 받는 룰라가 2014년 대선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룰라는 "신(神)은 한 사람에게 선물을 두 번 주지는 않는다"면서 또다시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오는 2014년 대선에 출마해 승리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높은 지지율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물론 2014년에 임박해 전개될 브라질의 정치 상황이 룰라를 다시 한 번 대선 무대로 끌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는 지금 후임자의 성공을 기원하며 아름답게 물러나는 길을 택하겠다는 것이 룰라의 뜻으로 해석된다.

룰라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서는 내년 4월 말 상파울루 시에서 문을 여는 '룰라 연구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룰라 연구소'는 룰라가 과거 노동운동가 시절 운영했던 '시민 연구소'를 확대 개편하는 것이다. 룰라의 노동운동과 집권에 큰 역할을 한 '시민 연구소'는 룰라 정부 출범으로 활동을 중단했었다.

'룰라 연구소'는 중남미.아프리카 빈곤국 지원, 중남미 통합, 브라질 정치개혁 등 크게 3가지 분야에서 룰라의 퇴임 후 활동 근거지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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