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춘 전 외무부 대사(69)는 '외교계의 쓴소리'로 통한다. 그는 오스트리아·싱가포르·필리핀 등지에서 대사를 지냈다. 이 전 대사는 최근에 벌어진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장관의 딸 문제를 '스캔들'이라고 표현하며 거친 독설을 쏟아냈다. 지난 9월8일 오후 서울 시내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장관의 딸이 외교부에 특채되어 지탄을 받고 있다. 외교 원로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
창피하고 가증스러운 일이다. 특권층 자녀의 특채가 외교부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유 전 장관이 관직을 이용한 오만과 불찰에서 생겨났다. 엄밀하게 말하면 '유명환 스캔들'이다. 한 명을 뽑는데 어떻게 자기 딸을 채용할 수 있는지, 한마디로 철면피이다.
이대사께서 재직할 때는 특채가 없었나?
내가 외무부에 들어갈 당시에는 고등고시를 통과하지 않으면 외무부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1970년대 말부터 특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외교부 내에 지연·학연으로 연결된 '이너 서클'이 존재하지 않는가?
외교부에는 서울대 출신들이 워낙 많으니까 '서울대 친목 모임'이 없다. 기타 대학이나 종교 그리고 공관에서 함께 오래 근무한 사람들끼리 친분 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이너 서클'이라고 말할 성격은 아니다. 다만, 자기와 친한 사람이 장관이 되면 '인지상정'으로 끌어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외교부 조직을 대폭 개혁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현재 외교부는 너무 방만하다. 사람과 자리의 비율이 안 맞지 않은 탓에 파견이 너무 많다. 재외 공관을 대폭 축소하고 인력도 줄여야 한다.
직업 외교관은 장관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유명환 스캔들'은 장관이나 차관이 아무 개념 없이 임명되다 보니 생긴 문제이다. 선진국을 봐도 직업 외교관이 외무장관이 된 적이 없다. 장관은 정책을 만들고 실시하는 자리이다. 여기에는 정치인이 임명되는 것이 맞다. 장관은 직업 공무원의 인사를 주물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차관은 인사나 예산 등 행정의 총책을 맡아야 한다. 차관은 그 자리가 일생의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더 이상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 차관을 끝으로 정년 퇴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부처를 제대로 지켜낼 수 있다.
외교부 전·현직 자녀들의 특채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판 '음서제'가 아니냐며 비판이 많다.
나는 기본적으로 특채는 반대이다. 특채는 거짓말을 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외교관이 된 것을 모두 문제 삼으면 안 된다. 물론 여기에는 공개 경쟁을 통해 실력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특혜나 뒷배경으로 외교관이 되는 일은 있어서도 안 될 일이고,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직업 외교관 중에는 국익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외교관 전부를 무차별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정착시키겠다고 한다.
국가의 수장부터 정직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유명환 전 장관의 스캔들도 이대통령의 원죄(BBK 거짓말)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도 (국민을) 속이는데 '내 딸 특채쯤은 못할 것이 뭐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공정한 사회는 정직한 사회를 전제로 한다. 정직하지 않으면 공정한 사회가 되지 못한다. 용어도 '공정한 사회'가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라고 해야 옳다.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미국 노인들 ‘씁쓸한 황혼’ (0) | 2010.09.17 |
---|---|
총리 후보까지… 당·정·청 수뇌 전원 軍미필 (0) | 2010.09.17 |
"비만은 단순히 많이 먹기 때문" (0) | 2010.09.17 |
이란 대통령 "코란 소각은 이스라엘 파멸 초래" (0) | 2010.09.11 |
국정원 직원, ‘몹쓸 짓’ 했나 (0) | 2010.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