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민주항쟁'과 21년 후인 2008년 6월 `촛불대행진'은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라는 점에서 상통하지만 주체ㆍ방식ㆍ조직ㆍ이슈 등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 군사독재와 '국민무시' 국정운영 = 21년 전과 지금의 시민들은 `정권 타도'라는 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전자는 군사정권의 독재를, 후자는 '국민을 무시'하는 국정운영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현재 촛불집회 참여자들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노래는 `헌법 제1조(윤민석)'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가사만 되풀이된다.
1987년에도 국민의 행동 동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당시에는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의 형식적 완성이 시급했던 반면 현재는 실질적 완성을 원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는 관측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반대하는 `먹을거리' 문제를 두고 정부가 미봉책으로 일관하자 시민들은 정권의 오만함을 비판하다 거리로 나섰다는 게 중론이다.
◇ 사회운동가와 여고생 = 전 국민적인 운동이고 전 사회적인 저항이라는 건 공통점이다.
하지만 6월 항쟁은 대학생과 재야인사 등 사회운동 조직들이 주축을 이뤄 불을 지폈고 촛불 대행진의 시발점은 여고생들이었다는 차이가 있다.
6월 항쟁 때는 사회운동 조직과 대학생들의 활동에 직장인 `넥타이 부대'와 일반 시민들이 가세했다. 하지만 촛불집회는 5월 초 청계광장에 운집한 10대 중고등학생들이 0교시 등 교육정책에 대한 반발과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을 표출하다가 20대→30대→40대→50대로 퍼져나갔다.
간간이 등장한 가정주부 유모차 부대와 예비군 부대 등 반 정부 투쟁과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시민들이 운동에 가담하면서 훨씬 폭넓은 시민들의 참여가 이뤄졌다는 점도 눈에 띈다.
◇ 화염병과 촛불 = 6월 항쟁은 전통적인 사회운동 방식으로 대단히 엄숙하고 살벌할 정도였지만 촛불집회는 유쾌하고 발랄하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시민들이 들고 나온 불씨가 화염병과 촛불로 대비될 만큼 21년 전에는 최루탄이 난무하고 쇠파이프와 보도블록, 화염병이 동원된 격렬한 폭력의 현장이었지만 올해의 경우 모두가 웃고 떠드는 문화제ㆍ축제다.
촛불집회에는 `고시철회 협상무효'라는 기본 구호가 있지만 점차 `이명박 퇴진'으로 바뀌는 상황이고 그 마저도 현장 분위기에 따라 내키는 대로 만들어지고 행진도 오와 열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자유분방하다.
경찰이 시위진압을 위해 물대포를 쏠 때 "온수(溫水)! 온수!"라고 외치거나 조금 더 지나면 "샴푸(shampoo)! 샴푸!"라는 구호가 나올 정도로 발랄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 국본과 국민대책회의 = 6월 항쟁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의 지휘에 따라 시민들이 대체로 수직적으로 움직인 반면 촛불 대행진은 완전한 수평적인 결합이다.
국본은 1987년 5월 27일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과 야당인 통일민주당과 함께 사회운동 세력ㆍ종교계ㆍ학생운동 조직 등이 연합한 단체로 6월항쟁의 구심체 역할을 했다.
국본과 대별되는 2008년의 단체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전국 시민단체와 네티즌의 모임인 이 단체는 운동의 중심으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시민들이 참여해 마음껏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자리만 만들어준다는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같은 시간에 집회를 하는 집단과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을 하는 집단이 따로 있을 정도로 모두가 참여하고 모두가 중심이 되는 특성이 돋보인다.
◇ 독재타도와 `고기 안 먹을래' = 군사정권의 독재 타도라는 굵직한 메시지로 시작한 6월 항쟁과는 달리 촛불 대행진은 미국 쇠고기를 먹기 싫다는 생활 정보에서 시작돼 반 정부 시위로 확산했다.
미국산 쇠고기에 광우병을 일으킬 수 있는 프리온(prion)이라는 물질이 들어있을 수 있고 그게 체내에 잠복하다가 발병으로 이어지면 사지가 마비되다가 비참하게 죽어야 한다는 걱정이 시발점이었다.
쇠고기가 수입되면 아무리 유통체제를 엄하게 정비하더라도 뼈 우린 물이나 라면 수프에 프리온이 남을 수밖에 없어 모든 음식을 안심하고 먹을 수 없게 된다는 미시적인 이슈가 지금도 촛불 대행진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두고 정부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고 생각한 시민들은 공공부문 민영화, 초중등 교육 자율화, 비정규직 문제 등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드러내고 있어 현 상황은 어쨌거나 6월 항쟁과 같은 반정부 투쟁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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