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 현빈, 누가 그를 '멜로킹'이라 했는가
"무엇이든 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정성을 다하라. 그리하면 이뤄질 것이다." - 정조
22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사극 영화 '역린'(이재규 감독, 초이스컷 픽처스 제작)이 뚜껑을 열었다. 올해 개봉할 10여편의 사극 블록버스터 중 첫 번째 주자로 사극 대전의 포문을 활짝 열었다.
현빈의 군 제대 후 복귀작이자 데뷔 이래 첫 사극 도전인 '역린'은 지난해 4월 캐스팅 라인업이 발표된 후부터 현재까지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역린'의 스틸과 포스터, 예고편은 공개 즉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악하면서 기대작으로 떠올랐다. 말 그대로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통해 숱하게 다뤄진 익숙한 정조가 현빈을 만나 어떻게 변할지 대중의 눈과 귀가 쏠렸다. '멜로킹'이었던 현빈이 사극과 어울릴지도 우려가 컸다. 그동안 현빈은 현대물과 궁합이 맞는 배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려는 기우였다. 우리가 알던 정조의 또 다른 면을, 사회지도층인 줄만 알았던 현빈의 변신이 완벽히 맞아떨어졌다.
더욱 성숙해진 남자로 돌아온 현빈은 비운의 왕 정조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한(恨)과 어머니 혜경궁 홍씨(김성령)에 대한 연민, 그리고 복수의 상대 정순왕후(한지민)의 분노심 등 매 순간 다양한 정조의 감정을 섬세하게 낚아채는 현빈은 뭇 여성들의 심장을 파고든다.
24시간, 단 하루 동안 정조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던 현빈은 과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정석의 정조를 선보였다. 양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군림하는 군주로 보는 내내 부담을 주기보다는 당파 싸움 속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사람을 하는 한 인간의 처절함을 전달했다. 군주 정조보다 인간 이산의 모습이 '역린'의 관전 포인트다. "그동안 보였던 정조와 다르다"는 자신감은 결코 호언장담이 아니었다.
변신에 성공한 이는 현빈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단아한 이미지의 한지민은 정조에 맞선 섬뜩한 정순왕후로 충격을 안겼다. 정조의 젊은 할머니로서 극의 신선함을 안긴 그는 착한 얼굴에서 쏟아져 나오는 섬뜩한 독기를 아낌없이 분출한다. 치명적이고 소름 끼치는 악역을 맛깔나게 소화했다. 더이상 참한 한지민은 없다.
여기에 '살인 병기' 살수가 돼버린 조정석과 광백 조재현, 정조를 지키는 상책 정재영, 혜경궁 홍씨 김성령, 홍국영 박성웅. 그리고 비밀을 간직한 세답방 나인 월혜 정은채까지 누구 하나 버릴 것 없는 환상의 라인업이다.
그러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저마다 스토리를 품고 있는 배우들 때문에 몰입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아쉬운 부분이다. 브라운관에서 '사극의 대가' 불리던 이재규 감독의 첫 스크린 연출인 만큼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이다. 웰메이드 사극을 만들고 싶었던 그의 바람은 영화 곳곳에서 느껴지지만 다소 욕심이 앞서지 않았나 싶다.
어렵게 첫발을 내디딘 이재규 감독. 그가 '천재 연출가'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음 작품에서는 좀 더 명확하고 깔끔한 수작을 만들 것이라 기대된다. 나무랄 데 없는 배우들의 호연과 화려한 볼거리, 하지만 살짝(?) 아쉬운 연출이 더해진 '역린'은 2시간 15분이란 다소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국민의 마음이 어수선한 가운데 쾌조의 스타트를 보일지 누구도 장담하긴 힘들다. 그러나 시국이 어려울수록 관객은 사극을 찾는 법. 현빈의 야심찬 복귀작이 어떤 성적표를 받을지 지켜볼 일이다.
'역린'은 정유역변을 모티브로 조선 시대 왕위에 오른 정조의 암살을 둘러싸고 죽이려는 자와 살리려는 자, 살아야만 하는 자의 엇갈린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현빈, 정재영, 박성웅, 조정석, 조재현, 김성령, 한지민, 정은채 등이 가세했고 MBC 드라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더킹 투하츠'를 연출한 이재규 감독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오는 3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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