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버스 끌어내기, 시위대-경찰 극한대립

CKwon 2008. 6. 8. 17:01

[현장] 7일 새벽 서울 광화문의 기록…흥분과 열정 그리고 현실

골목을 막고 선 경찰버스를 3대째 끌어냈을 때 뒤쪽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와, 정말 세계 역사에 남을 엄청난 사건이 시작되는 거야. 우리도 68혁명처럼 세상을 바꿔보는 거야."

72시간 촛불집회 사흘째인 7일 새벽, 광화문 사거리 인근 변호사회관 골목에서는 청와대 쪽으로 진입하려는 시위대와 경찰의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미 골목 안쪽은 경찰버스 7대가 겹겹이 막아선 상태였고 시위대는 밧줄을 걸어 버스를 한 대씩 끌어내기 시작했다. 맨 앞에 있던 버스가 광화문 사거리 쪽으로 끌려나간 때는 새벽 1시30분께. 종각역에서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서대문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흩어져 있던 시위대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청와대 인근 진출을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골목을 가로막고 선 경찰들에 맞닥뜨려 발길을 돌리던 중이었다.

 

바리케이트 역할을 하는 경찰버스에는 보통 경찰 대여섯명이 타고 있는데 안에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워두기 때문에 밧줄을 묶어 백여명 이상이 한꺼번에 끌어당겨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위대는 밧줄을 끌어당기는 동시에 버스를 양쪽에서 흔드는 방법을 썼다. 바퀴와 지면 사이의 마찰이 줄어들면서 호흡만 잘 맞으면 버스가 어느 순간 죽 끌려나오게 된다.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이 나서서 장갑을 끼고 밧줄을 잡았고 주변에서는 "힘내라, 힘내라"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시위대가 버스를 세 대째 끌어냈을 때는 새벽 3시30분. 버스를 심하게 흔들자 경찰들이 빠져나왔고 시위대는 "경찰들 때리지 마세요"라고 외치면서 길을 터줬다. 경찰들은 시위대의 박수를 받으면서 쑥스러운 표정으로 사라졌다. 시위대는 텅 빈 버스를 전리품으로 차지했지만 경찰들이 열쇠를 뽑아간 뒤라 다시 밧줄을 묶어 끌어당겨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인근 건물 유리창이 깨지고 버스가 전봇대에 부딪히는 등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밧줄이 가는 탓인지 여러차례 끊어지기도 했다.

 

 

시위대가 처음 경찰버스를 끌어내기 시작한 것은 첫 밤샘 시위가 벌어진 다음 날인 1일 저녁부터였다. 이날 새벽 경찰의 과잉진압 상황이 알려진 뒤라 다시 청와대로 가겠다는 시위대의 의지는 더욱 강렬했다. "평화행진 보장하라"는 함성도 터져나왔다. 이날도 세 대의 버스를 끌어내는데 성공했을 뿐 겹겹이 쌓인 버스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이때부터 버스 끌어내기는 촛불시위의 핵심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일부 시민들이 "비폭력을 주장하면서 이러면 안 된다"고 막아서기도 했지만 "계속하자", "청와대로 가자"는 목소리가 다수였다.

촛불시위는 시작부터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일몰 이후의 집회는 원칙적으로 불법이고 허가 받지 않은 도로 점거 역시 불법이다. 그러나 6일 집회처럼 최대 20만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은 서울 도심에 없다. 다수가 무조건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애초에 합법적인 집회가 불가능한 조건이기도 하고 정부는 시민들의 정당한 집회와 시위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시위대의 요구는 평화로운 집회와 행진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애초에 집회 자체를 부정했고 시민들의 주장에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버스 끌어내기는 시민들의 주장을 청와대에 전달하기 위해 시위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다. 이들의 숫자는 비좁은 청계광장이나 시청앞광장에 갇혀 있기에는 너무 많고 꿈틀거리는 변혁에의 열망은 이미 경찰의 어설픈 바리케이트를 넘어섰다. 명백한 불법이지만 정부의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시민들이 늘어갈수록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시위대의 행동은 더욱 공격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새벽 4시. 나란히 놓인 버스를 세 대나 끌어내고 나자 골목을 가로막고 선 버스가 드러났다. 시위대 가운데 일부가 뒷문을 밀치고 들어가 안에 있던 경찰들을 내보냈고 곧이어 "열쇠를 찾았다"는 함성이 들렸다. "운전해서 몰고 나오면 되겠네." 누군가가 소리치자 시위대는 환호했다. 이어 1종 대형 운전면허가 있다는 한 시민이 버스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자 시위대는 "1종대형, 1종대형"을 외치며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무적의 김밥부대'에서 후원한 초코파이와 생수가 도착한 것도 그때였다. 조금씩 먼동이 터왔지만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그러나 쉽게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네 번째 버스는 시간이 지나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좁은 골목에 가로로 놓인데다 뒤쪽에 다른 버스가 바짝 붙어 있고 경찰이 이 버스들을 쇠줄로 단단히 묶어 놓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남아있는 네 대의 버스를 한꺼번에 끌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위대는 다시 버스에 밧줄을 연결해 당기기 시작했지만 역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위대가 완전히 포기하기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더 걸렸다. 시위대가 다시 광화문 사거리로 쏟아져 나온 때는 새벽 5시30분께였다.

만약 이날 네 번째 버스를 끌어냈다면 시위대는 정부종합청사 뒷골목을 가로질러 청와대 앞까지 나갔을지도 모른다. 경찰과 충돌이 불가피했겠지만 이날 새벽 광화문 사거리에 남아있던 시위대는 모두 5000여 명. 경찰은 무리한 충돌을 자제하며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위대의 버스 끌어내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위대는 광화문 사거리 보다는 상대적으로 경찰의 경비가 허술한 비좁은 골목길을 공략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철저하게 비폭력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정부가 쇠고기 수입을 강행한다면 경찰과의 충돌도 격화될 것이고 성난 시민들이 이를 뚫고 청와대 앞까지 진격하는 최악의 사태에 맞닥뜨리게 될 수도 있다.

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