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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려한 휴가’, 처절한·찬란한 ‘10일간의 사투’
CKwon
2007. 7. 8. 13:43
역사 속의 비극적 사건과 상업영화는 어떻게 서로를 끌어안을 수 있을까. 역사에 무게를 둔다면 관객은 소화불량을 호소할 테고, 재미를 추구한다면 무거운 역사를 가볍게 다뤘다는 비판을 받을 공산이 크다. 10일간의 광주민주항쟁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감독 김지훈)가 5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89), 사실주의적 저예산영화 ‘부활의 노래’(90), 역사의 상처를 은유로 그려낸 ‘꽃잎’(96)이 ‘80년 광주’를 다룬 적이 있지만, 대작 상업영화로 당시의 광주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건 ‘화려한 휴가’가 사실상 처음이다.
# 역사성+재미 ‘비빔밥’ 같은 영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화려한 휴가’는 요즘 젊은 관객도 쉽게 떠먹을 수 있는 영화다. 그와 동시에 필수영양소도 결코 빼놓지 않은, 말하자면 ‘비빔밥’ 같은 영화로 보인다. 손수건을 꺼내들게 하는 슬픔 사이, 유머가 양념처럼 뱄다. 대중영화임을 잊지 않은 적절한 상영시간(125분)은 장점이고, 서사의 흐름도 그다지 막히는 곳이 없다. 다만 대중상업영화의 공식에 너무 딱 들어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기본공식조차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영화들이 우리 주변에 수두룩하다는 ‘현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평범한 택시 운전사 민우(김상경)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동생 진우(이준기)와 함께 서로 아끼며 살아간다. 민우는 진우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간호사 신애(이요원)를 마음에 두고 수줍은 구애 작전을 편다. 평범하면서도 아름다운 삶을 살던 이들은 공수부대가 광주에 들어오면서 역사의 비극에 휘말린다. 눈앞에서 친구, 형제, 자식을 잃은 시민들은 퇴역장교 출신인 택시회사 사장 흥수(안성기)를 중심으로 시민군을 조직한다. 끝까지 전남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은 예정된 비극을 향해 담담히 나아간다.
# 100억 제작비·화려한 캐스팅 화제
영화의 장점은 당시 ‘적’이었던 진압군에 대한 증오를 과다하게 표출하기보다는 시민의 연대, 사랑, 해방감을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권력에 눈먼 ‘전장군’과 일부 강경파 장성에 의해 참담한 진압작전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군인도 어디까지나 인간이었다. 목적지를 모른 채 탑승한 공수부대원들은 비행기가 북이 아니라 남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고 동요한다. 대치하고 있던 시위대가 던진 걸쭉한 농담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는 군인도 있었다.
공수부대가 잠시 물러간 뒤 해방구가 된 광주의 모습은 아름답다. 자신들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기쁨에 시민들은 순진무구한 함성을 지르고 노래를 부른다. 광주 북구 첨단 과학산업단지의 5만6000여㎡ 부지에 지었다는 금남로 세트는 사실성을 더한다. 총 100억여원 제작비 중 세트 제작에만 30억원이 투입됐다. 허풍이 심한 택시기사도, 친구를 잃은 고등학생도, 여성을 등쳐먹고 살던 제비족도 이 순간만은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다시 섰다.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주인공은 아무리 험한 고난을 겪어도 죽지 않지만, 기쁨에 겨워하던 광주 시민들은 곧 총알 세례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은 이 순간을 짧지만 강렬하게 느낀다.
# 아물지 않은 상처’ 마음 편치만은 않아
김상경은 도회적이고 날카로운 평소 이미지 대신 순박한 웃음을 짓고 속절없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평범한 택시기사가 됐다. 이요원은 방금 저도 모르게 쏘아버린 군인에게 “죽으면 안돼요”라고 말하며 인공호흡을 하려는 겁에 질린 간호사 역할을 잘 해냈다. 안성기, 송재호, 나문희 등 중진배우들은 그들의 이름을 떠올릴 때 즉각 연상되는 전형을 연기했는데, 상업영화 제작자와 대중이 가장 원하는 이미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흠은 아니다. 제작자인 유인택 기획시대 대표는 “5·18이 소재일 뿐 대중영화”라고 시사회에 앞서 영화를 소개했다. 그러나 사실 ‘화려한 휴가’는 팝콘과 함께 즐길 만큼 마음 편한 영화는 아니다. 이미 반세기가 지난 전쟁을 소재로 한 ‘태극기 휘날리며’, 대중에게 덜 알려진 소재를 다룬 ‘실미도’에 비해, ‘화려한 휴가’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우리의 상처를 만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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