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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주의 확산… 미국의 위상이 흔들린다

CKwon 2006. 7. 25. 16:08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장관의 자산을 동결한다.” 벨로루시 정부가 지난 6월 26일 국영TV를 통해 발표한 중대성명의 내용이다. 미국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로루시 대통령의 미국 자산을 동결한 데 반발한 조치다. 부시 대통령이나 라이스 장관이 벨로루시에 자산을 갖고 있을 리 만무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겠다는 벨로루시의 의지의 표현이다. 부시 대통령은 6월 19일 루카셴코 대통령과 국영 TV 및 라디오 방송 등 벨로루시의 개인 및 기관 10군데에 대해 자산을 동결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동결되는 자산은 벨로루시 정부기관과 정부 고위인사 등의 미국 자산 또는 미국 금융기관이 압류 중인 자산이다.

 

1994년부터 벨로루시를 통치해온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 3월 부정선거 논란이 있었던 대통령선거를 통해 세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미국은 그동안 벨로루시를 인권탄압과 부정부패 등을 문제 삼아 “유럽의 마지막 독재국가”라고 비판해왔다. 실제로 벨로루시는 국가가 모든 부문을 철저히 통제하는 공산주의식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의회에는 야당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보안위원회(KGB)라는 비밀경찰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3월 대선에서 우크라이나 등 다른 옛 소련 공화국들처럼 ‘색깔 혁명’을 통해 벨로루시에도 민주화가 이루어지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그럼에도 불구, 루카셴코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온 민주화 세력을 강력하게 탄압하고 조직적인 선거부정을 통해 82.6%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압승했다. 미국은 “선거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각종 제재조치를 동원, 벨로루시를 압박했다.

 

하지만 미국이 벨로루시 제재에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았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루카셴코 대통령의 미국 자산을 동결한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상징적 조치에 불과했다. 벨로루시도 이를 알아차린 듯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벨로루시의 ‘보복’은 일종의 소극(笑劇)처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재 세계유일 초강대국이라는 말을 듣는 미국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인구 980만명밖에 안 되는 벨로루시는 이런 코미디 같은 보복이 아닌 실질적인 위협을 미국에 가할 수도 있다. 바로 “미국의 위협이 계속되면 전술 핵무기를 배치할 수도 있다”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경고다. 만약 벨로루시에 전술핵무기가 배치된다면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전략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벨로루시는 1991년 소련에서 독립했지만 러시아와의 재통합도 고려하고 있다. 전략요충지에 있는 벨로루시가 전술 핵으로 무장하고 러시아에 다시 편입된다면 미국으로서는 엄청난 타격일 수밖에 없다. 벨로루시라는 소국(小國)에 ‘거대한 제국’ 미국이 큰코다칠 수도 있다.

 

군주제로 통치된 로마와는 달리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미국이 주장해온 가치는 바로 민주주의다. 특히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자국의 가치를 강요하는 독선적 정책을 보여왔다. 하지만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학 케네디 행정대학원 원장의 지적처럼 미국의 일방주의는 국제사회의 반발을 초래했다.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가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이를 타국에 강요하거나 위협한다면 오히려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기준이 이중적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부시 2기 행정부는 지난해 출범하면서 ‘민주주의 확산’을 국정의 목표로 삼고 이를 달성하려면 ‘폭정의 전초기지들(outposts of tyranny)’을 민주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용어는 라이스 국무장관이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인준 청문회(2005년 1월 18일)에서 처음 사용했다. 라이스 장관이 규정한 ‘폭정의 전초기지’는 국민을 억압하는 반(反) 민주국가를 일컫는다. 이에 속하는 국가는 쿠바, 미얀마, 북한, 이란, 벨로루시, 짐바브웨 등 6개국이다. 이들 중 북한과 이란은 부시 대통령이 2002년 연두교서에서 규정한 ‘악의 축(Axis of Evil)’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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