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제한 송전으로 인한 정전 대란 소식을 뒤로하고 지난주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무거운 마음으로 도착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는 150여 개국 정부와 원자력계 관계자 3000여 명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제55차 정기총회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비엔나 시내 도나우강변에 위치한 IAEA 본부에서 열린 이번 정기총회는 지난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원자력 관련 국제회의여서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원자력은 20세기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힌다. 한 개인의 발명이 아니라 각국의 많은 과학자들의 발견과 발명이 한데 모여져 탄생한 `집단 지성'의 창작물이다. 이번 IAEA 정기총회는 바로 그 원자력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 중 하나로 꼽히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지난 6개월 간 수차례에 걸친 각료급 회의와 실무자 회의를 통해 원자력을 이용하고 있거나 원자력을 도입하기를 희망하는 많은 나라들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한 끝에 내린 결론을 내놓는 자리였다.
총회에서 IAEA와 회원국들은 원자력 안전 강화를 위한 액션 플랜, 즉 행동 계획을 채택하는 데 합의했다. 모두 12개항으로 구성된 액션 플랜은 각 회원국과 IAEA가 보다 높은 수준의 원자력 안전 기준을 마련하고, 이 기준을 지킬 수 있도록 점검과 규제를 강화하고, 불시의 사고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며, 새로 원자력 발전을 도입하려는 국가를 포함한 모든 회원국들이 안전 강화를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후쿠시마 이후 한데 머리를 맞대고 원자력의 미래에 대해 고민한 세계는 `집단 지성'의 결과물로 후퇴나 우회가 아닌 안전 강화를 전제로 한 `신중하지만 지속적인 전진'을 선택한 것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또한 후쿠시마 사고 직후 세계 각국 특히 유럽 주요 국가들이 원자력 발전 확대 정책의 재고 또는 원전 폐기를 선언한 것과 달리, 많은 나라들이 여전히 원자력 이용의 유지 또는 확대를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도의 경우 원자력 발전 용량을 2020년까지 현재의 4배, 2030년까지 13배까지 늘리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베트남은 2014~2015년 중에 원전 2기의 건설에 착수해서 2020년 시운전을 시작할 예정이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을 위한 새로운 연구용 원자로 건설을 검토하고 있음을 각각 밝혔다. 아마노 IAEA 사무총장은 현재 세계에서 가동 중인 432기의 원전 외에 오는 2030년까지 최소 90, 최대 350기의 원전이 건설될 것이라는 전망을 새로 내놓았다.
한국 대표로 총회에 참석한 김창경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은 기조 연설에서 세계인의 복지 증진과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해 안전성 강화를 전제로 한 원자력의 이용 증진은 지속돼야 하며, 이를 위한 국제공조가 절실한 바 한국이 원자력 모범국가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적극 표명했다. 아울러 개발도상국의 원전 안전 인프라 구축을 위한 인력 양성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기금 지원을 약속하고, 각종 암 진단 및 치료용 동위원소의 세계적 수급난 해소에 기여할 동위원소 전용 원자로를 2016년까지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말과 행동 모두를 통해 우리나라가 원자력 안전 강화와 원자력 이용 증진을 위한 국제사회 노력의 중심이 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나타낸 것이다.
IAEA 총회와 함께 지구 반대편 뉴욕에서 개최된 유엔 원자력안전 고위급 회의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기조 연설을 통해 "후쿠시마 사고가 원자력을 포기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보다 안전하게 원자력을 이용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때"라고 역설했다. 이 대통령은 안전에 대한 신뢰가 확보될 때 원자력 이용이 확대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독립적인 원전 안전규제 체제 구축과 투명성 확보, 불의의 사고에 대비한 인접국가간 공조 강화를 호소했다.
지난번 전국적 정전 사태에서 보았듯 에너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절전과 신재생 에너지 개발 등 다각적 대책이 필요하며 원자력 발전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인류가 찾은 가장 강력한 에너지인 원자력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임을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세계 각국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이번 IAEA 총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원자력의 평화적이고 안전한 이용에 앞장서온 한국이 이같은 가치와 인식을 지키고 확산시키는 데 앞장서 리더십을 발휘해야할 때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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