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에서 원전 폐쇄와 동결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원전 르네상스의 퇴조’기에 접어들었다.
2022년까지 원전 폐쇄를 합의한 독일에 이어 스위스에서도 2034년까지 원전을 폐쇄하기로 합의했다. 이탈리아에서도 원전 건설의 무기한 동결을 발표했다. 반면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여전히 워자력을 활용하는 정책을 지속할 계획이며 폴란드 루마니아 터키 등 동유럽 국가들도 원전 신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원전 르네상스’는 퇴조를 보이고 있기는 하나 결과적으로 유럽 각국은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안보와 경제 여건, 정치적 상황,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실리 차원에서 원자력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원전 폐쇄 움직임, 독일ㆍ스위스ㆍ이탈리아= 일본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극적으로 원자력 정책을 전환한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은 2022년까지 독일 내 17개 원전을 폐쇄하기로 합의했다. 집권 기독교민주당(CDU)과 기독교사회당(CSU), 자유민주당(FDP)이 지난 주말 심야 마라톤협상을 통해 거둔 결과였으나 전력 확보 방안, 비용, 법적 정당성 등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 보수 연정은 2022년까지 원전을 모두 폐쇄한다는 이전 정부의 정책을 폐기하고 가동시한을 평균 12년 연장했다. 이에 대해 녹색당은 “원래 계획으로 복귀한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고, 재계는 여론에 밀린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 같은 비판과 더불어 우려가 커지는 것은 전력공급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예측과 비용 부담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전체 전력생산 중 23%를 원자력에, 17%를 풍력 주도의 대체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어 2020년까지는 대체에너지의 비율을 4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이에 가스와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을 늘리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스위스 연방각의(연방정부)는 지난달 25일 회의를 열고 2034년까지 원전을 점진적으로 퇴출하기로 했으며 자국내 원전 수명을 50년으로 설정한 퇴출 계획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5개 원전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은 2019년에 가동을 중단하고 마지막 원전은 2034년에 폐쇄된다.
스위스는 원전을 통해 국내 전력 수요의 약 40%를 감당하고 있는데 이를 점진적으로 퇴출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2억~38억 스위스프랑(2조7천억~4조7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럽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는 것이 정부 차원의 입장이며 이를 통해 장기적 이익을 확신하고 있다. 또 원전 대신 다른 발전 시설 건립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국가 이미지도 제고될 것이라는 게 스위스 정부의 입장이다.
이탈리아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직후인 1987년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원전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출한 이후 25년 동안 원전 포기 정책을 유지해왔다.
다만 전력 수요가 증가함에도 대안을 찾지 못했던 이탈리아 정부는 수입 원유 및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2014년부터 4기의 신형 원자로를 건설하고 2030년까지 전체 전력 생산량 가운데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25%로 높이기로 하는 계획을 마련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반대 여론이 90%에 육박하자 정부는 지난달 19일 원전건설 무기한 동결 방침을 밝혔지만, 원전을 포기했다기보다는 반대여론 무마용 조치라는 시각이 우세한 상황이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경우 현재 2기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지만 일본 원전 사고를 계기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 생산을 늘리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집권당인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대변인은 “우리의 목표는 2020년까지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력을 모두 충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목표를 넘어 더 많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퍼거스 어윙 에너지 장관은 “탄소 배출을 줄이고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해야 한다”면서 “차세대 해상 풍력 발전소 건설에 3억 파운드를 투자하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필요량의 185%까지 생산해 이를 수출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 원전 고수, 프랑스ㆍ영국=프랑스는 독일 스위스에서의 움직임과는 달리 원전을 고수하겠다는 확고한 방침을 세우고 있다.
에릭 베송 산업장관은 원전을 폐쇄하는 것을 국가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고려한 적이 없다고 밝히며 원전을 폐쇄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석탄이나 천연가스와 같은 기존 에너지원의 소비가 증가할 것이고 그에 따라 전력요금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도빌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원전 유지 방침을 천명하면서 안전성 제고에 더욱 힘을 쏟겠다고 밝힌 바 있다.
프랑스의 이런 자신감은 자국 원전들이 지진과 홍수 위험에 견딜 수 있도록 건설됐다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원전 의존도가 높은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프랑스는 전체 58기의 원자로에서 생산되는 전력이 전국 에너지 수요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원전 의존도가 높다.
영국은 일부 국가의 원전 포기나 보류 움직임에 대해 너무 성급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크리스 훈 에너지.기후변화부 장관은 일본 원전사고 이후인 지난 3월 15일 하원에 출석해 자국의 원전정책에 대해 설명하면서 “유럽의 정치인들이 적절한 평가도 하지 않은 채 너무 성급한 결정을 내렸다”면서 “정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8개 신규 원전 개발 계획 등에 미치는 영향을 예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이는 원전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가장 현실적 대안이라는 것이 영국 정부에 뿌리깊이 내려있는 모습이다.
영국의 원전은 현재 전체 전력생산의 20%를 담당하고 있으며 19개의 원자로 가운데 18개가 2023년까지 수명을 다하기 때문에 2025년까지 모두 500억 파운드가 투입되는 8개 신규원전 건설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특히 탄소 포집 저장 설비가 없는 화력발전소 허가를 금지하고 있고 온실가스를 2050년까지 1990년 대비 80% 감축하는 등의 목표를 추진해왔는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물론 반발여론도 있으나 영국 정부는 반발 여론을 의식해 안전성을 강화하는 선에서 원전 정책을 지속해나가리라는 예상이다.
헤럴드생생뉴스/onlinenews@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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