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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도 과외가 되나요

CKwon 2009. 10. 6. 13:13
'연애 기술' 강좌에


"일본 출장을 가서도 국제전화로 1시간씩 통화하는데, 막상 제가 소개팅을 했다고 해도 질투하는 기색이 없어요. 이 남자, 저를 좋아하는 걸까요?" "이벤트에서 만나 첫눈에 반했는데, 연락도 못 하고 두 달째 속만 끓이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추석을 앞둔 지난달 말, 한 결혼정보업체가 주최한 연애 강좌에서 '연애의 기술'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수강생들은 20대 후반~30대 초반의 평범한 직장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질문은 2지 선다형으로, '바다가 좋으세요, 산이 좋으세요?' 식으로 상대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대화에 자신이 없으면 서로 마주 보지 말고, 옆으로 나란히 앉는 장소를 고르세요." 수강생들은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노트에 받아 적기 바빴다. 이날 강의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 통에 예정된 2시간을 넘겨 3시간30분 동안 이어졌다.

최근 국내에서 '혼활' 열풍이 불며 '연애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혼활'(婚活)은 '결혼 활동'의 줄임말로, 지난해 일본 가족사회학자인 야마다 마사히로 등이 쓴 < 혼활시대 > 에서 "취직을 위해 구직활동이 필요하듯 결혼하려면 결혼 활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구직활동처럼 '스펙'(갖가지 조건)을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혼활 바람은 올해 초 국내에 상륙했다. '연애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결혼정보회사의 강의가 조기에 마감되는가 하면, 지난 7월에는 결혼적령기 남녀들을 위한 '연애전문학원'까지 생겼다. 한 유명 결혼정보회사는 지난 8월부터 매달 '연애화술'과 '실전 연애비법' 등을 강의하는 '혼활 캠프'를 열고 있는데, 정원(30명)의 7배가 넘는 인원이 몰렸다고 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혼활에 관심이 커지면서 대기업에서도 사원들 대상으로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이 꾸준히 온다"고 전했다.

혼활 강사인 이명길(30)씨는 '연애 과외'가 인기를 얻는 이유를, "연애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초식남'(결혼보다 취미에 관심을 두는 남자), '건어물녀'(일에 몰두해 연애 세포가 말라버린 여자), '철벽녀'(연애 기술을 몰라 남자를 튕겨내는 여자) 등 결혼 관련 여러 신조어가 유행하는 것도 이런 세태의 방증이라는 것이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세대나 '88만원 세대'는 다양한 사람을 겪어봐야 할 20대의 시간을 취업 준비 등에 소진한데다, 현실적인 기준에 맞춰 결혼 상대자를 찾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20~30대가 '자기계발'에 익숙해진 세대라는 점도 혼활 열풍과 깊은 관계가 있다. '연애'도 의사소통 능력의 한 갈래로 보고 강의를 듣는 데 거부감이 없으며, 상담하고 개선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김혜정 대표는 "결혼을 위해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화된 결과"라며 "데이트 기법 말고도 '결혼을 위한 재테크' 강의, 자신의 매력을 파악하기 위한 심리학 강좌 등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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