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버지니아 공대(VT) 중앙 잔디 광장에 마련된 16개의 추모판에는 “넌 우리의 영혼이야. 너의 친절함, 너의 자상함 늘 우리 곁에 있을 거야” 등등의 문구가 쓰여졌다. 재학생과 주민들의 추모 행렬은 밤새 이어졌다. 학생들은 범인에 ‘분노’를 쏟기보다는 희생자들을 ‘영웅’으로 여기고 기리려고 애썼다. 특히 제자들을 위해 몸으로 범인 조승희를 막으려 했던 교수들의 헌신(獻身)에 존경을 표시했다. 본지는 광장의 간이 추모시설을 주도적으로 만든 조너던 헤스(Hess·4학년·기계공학), 함께 일을 돕고 있는 케빈 설리번(Sullivan·3학년·역사학), 롭 윈(Nguyen·3학년·기계공학)과 함께 얘기를 나눴다. 다음은 이들과 나눈 대화의 주요 내용.
―학교 분위기는 어떤가.
▲헤스=졸업을 3주 남기고, 이런 일이 일어났다. 4년간 함께 했던 친구들이 함께 졸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설리번=학생들은 분노하기보다는 슬퍼한다. 그러나 이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격려와 사랑이 정말 큰 힘이 된다. 최근 프로야구팀인 워싱턴 내셔널스가 VT 모자를 쓰고 경기를 한 데 대해 감격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나.
▲설리번=그저 정신이상자의 소행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에 구멍이 난 것이다.
▲윈=이런 참극은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었다. 학교가 모든 학생들을 상대로 정신 감정을 해서 정신이상자를 걸러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대학은 당시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했다고 본다.
▲설리번=이런 무차별 살인의 범인들이 갈수록 지능화해서, 예행연습을 하는 등 치밀해졌다. 미래에 비슷한 범의(犯意)를 가진 자들 중에서 행여나 ‘누가 더 많이 죽였나’ 식의 숫자 싸움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이번 참사에도 불구하고, 폭발물 장난 경고가 미 각지에서 잇따른다. 모방범죄도 일어나지 않을까.
▲헤스=TV에서 범인의 동영상을 공개한 것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줄 위험성이 있다. 우리는 악마를 영웅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희생자들이 우리의 영웅이다.
▲설리번=폭스 뉴스가 범인의 동영상을 더 이상 방영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잘 한 것이다. 동영상 방영은 범인이 원했던 것이다. 범인은 전 세계가 자신을 보게 만들려고 동영상과 사진들을 NBC방송에 보낸 것이다. 컬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범들도 자신들을 ‘순교자’로 묘사했다. 그때 언론이 그들의 주장을 그들이 원했던 대로 보도하니까, 8년 뒤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닌가.
▲윈=그래도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정보를 준 것은 사실이다. 다만 방송사들이 그 동영상을 너무 자주 반복하는데, 우리에겐 그건 악몽이다.
―총기 규제가 다시 떠올랐는데.
▲헤스=사람을 죽인 것은 총이 아니라, 사람이다. 체육관에 가득 모인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폭탄은 집에서 세제와 비료 갖고도 만들 수 있다.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교육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윈=총은 이제 어느 정도 규제돼야 한다. ‘총을 소지할 권리가 있다’고 미 헌법(수정헌법 2조)에 명시돼 있지만, 그때와 지금은 사회 배경이 너무 다르다. 총이 없으면 이런 다중(多衆) 살인은 힘들어질 것이다.
―범인이 한국 국적인데….
▲설리번=처음엔 으레 백인이 한 줄 알았다. 대규모 살인 사건은 백인들이 저질렀으니까. 그런데 아시아인이 범인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아시아계 미국인이나 전 세계의 아시아인들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행은 한 정신이상자가 저지른 것이다. 그의 범행을 그가 한국인이고 아시아인이라는 점과 연관 지어 생각하지는 않는다.
▲윈=나도 범인이 아시아인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아시아인들은 가족과 교육을 중시하지 않는가.
―다음주 월요일 수업이 재개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설리번=월요일에 평소처럼 일어나서 학교에 갈 것이다. 테러범이 나의 생활을 바꾸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 어떻게 해서든 싸워서 이길 것이다.
▲윈=휴교령이 내려진 뒤 많은 학생들이 집에 갔다. 우리 부모님도 집으로 돌아오라고 매일 전화하신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건 범인의 위세에 눌리는 것이다. 학교에 남아서 할 일들을 찾아볼 것이다.
―이번 사건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헤스=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살던 대로 살아갈 것이다.
▲설리번=학생들을 위해 살신성인한 교수님들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그들이 우리를 보호했듯이, 나도 그런 교수가 되고 싶다.
▲윈=내가 지금도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앞으로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결코 굴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친구와 교수님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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